日日是好日

2020.04.05 12:12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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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할 때 다음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한다고 한다.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시작하여 연대기적으로 자신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Life-line에 따라 전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신은 있을 수 없었던 사건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후자의 삶에는 그 사건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전환점 혹은 변곡점이 있다. 아마 사도 바오로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강력한 태풍일수록 그 중심에 있는 “태풍의 눈”은 뚜렷하다. 사람도 그 심중에 자신의 삶을 온통 변화시킨 그 전환점, 변곡점을 흐트러지지 않게 간직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기억할 때 그의 삶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전개된다. 우리는 이런 점을 개인에게서만이 아니라 민족적인 차원에서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인 차원에서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일을 자신들이 한 민족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난 사건으로 본다.

 

신명기 26:5~10 은 신약의 사도신경과 같은 구약성서의 유명한 신앙고백이다. 이 신조에는 유대인들의 자기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람인 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 몸 붙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불어나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집트인들은 우리를 억누르고 괴롭혔습니다. 우리를 사정없이 부렸습니다.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는 우리의 아우성을 들으시고 우리가 억눌려 고생하며 착취당하는 것을 굽어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억센 손으로 치시며 팔을 뻗으시어 온갖 표적과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모두 두려워 떨게 하시고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즉 야훼여, 주께서 저에게 주신 이 땅의 햇곡식을 이제 제가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

 

이집트에서의 엑서더스는 그 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주요한 틀로서 작용한다.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포로들이 돌아오는 것도 제2 이사야는 엑서더스의 재현으로 해석한다. 예수는 이 민족적인 상징을 더욱 확대, 심화시켜 자신에게 적용하여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고난 받는 야훼의 네째 종으로, 또한 많은 이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바쳐지는 제물,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이해한다. 이로서 어린양의 피를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것을 상징하던 유월절은 이제 부활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첨가되어 그리스도교 전례의 심장이 된다.

 

오늘 성지주일의 시작전례에서는 벳파게에서 출발하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이야기한다. 나는 2001년 안식년때 예루살렘에서 여러달 머물며 공부하기전 90년에 부활절 방학 2주를 예루살렘에서 지냈었다. 운 좋게도 예수무덤성당에서 드리는 부활절 미사도 초청받아 참석하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는 정복자의 군마가 아니라 순하디 순한 암나귀를 탄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할 정도로 그 존재의 성정을 잘 드러낸다. 나귀나 노새, 사슴, 노루, 고라니등은 초식동물이라 그런지 눈이 예쁠 뿐만 아니라 선함과 유순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당장 그날 밤부터(성. 목요일) 벌어질 일을 예견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예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그때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치열한 내적전쟁을 치렀을 것 같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말하는 그런 류의 회의와 말이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싸움 속에만 있을 수 있다는 역설은 인간의 본성을 잘 파악한 말이다.

 

한 가족이 먹을 만한 크기의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쓴나물과 함께 먹는 예식을 통해 유대인들은 다시 한 번 그날 그 사건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 결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해마다 유월절은 자신들이 태어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날이다. 크리스천들 역시 저마다 자신의 엑서더스를 되새기며 다시 시작하는 날이다.

 

 

처음처럼

 

― 신영복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크리스천들에게도 부활이란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그러기에 모든 것을 걸고 떨쳐 일어났던 그때를 기억하며 지금 다시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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