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이 바람결에 날리는 가는 비를 맞으며 좀 무리하여 우이령에 다녀오다. 엊그제 성령강림축일을 끝으로 부활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로 돌아왔다. “남루한 일상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는 말처럼 뭐 특별할 것도 눈을 끌만한것도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음에 마음이 놓인다. 이런 풀린 마음에 주는 하느님의 충격요법인지 연중 9주 월요일, 화요일 독서기도는 욥기다. 사는 동안 피치 못하게 격고 더러는 잊은 여러 인연들은 성서의 구체적인 언어와 사실적 상황묘사로 다시금 우리앞에 현실화되며, 재 체험된다. 묘사된 들판은 언제나 실물보다 더 푸른 법이니 재 체험의 충격도 그러할 것이다. 오랜만에 성서에서 ‘문학의 힘’을 다시금 느낀다.
욥기 31장...발췌
욥이 말하였다.
젊은 여인에게 눈이 팔려 두리번 거리지 않겠다고
나는 스스로 약속하였네.
하느님께서 위에서 나누어 주시는 분깃은 무엇인가?
전능하신 분께서 높은 데서 떼어 주시는 유산은 무엇인가?
악당에게는 파멸이, 바람둥이에게는 고독이 아니던가?
그는 나의 걸어온 길을 살피시고
나의 발걸음을 세시는 분.
내가 허황한 생각으로 살았다거나
이 발이 거짓으로 서둘렀다면,
바른 저울에 달아 보시면 아시리라.
하느님께서 나의 흠 없음을 어찌 모르시랴?
내 발길이 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든가
이 마음이 눈에 이끌려 헤매고
이 손바닥에 죄지은 흔적이라도 묻어 있다면,
내가 뿌린 것을 남이 먹고
내 밭에서 자란 것이 뿌리채 뽑혀도 좋겠네.
내가 만일 남종의 인권을 짓밟았다든가
여종의 불평을 묵살해 버렸다면
하느님께서 일어나실 때 어떻게 하며
그가 심문하실 때 무엇이라고 답변하겠는가?
나를 모태에 생기게 하신 바로 그분이
그들도 내시지 않으셨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