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에 푸른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펼쳐진 아침이었다. 새벽에는 서늘한 바람 속에 동쪽 하늘이 진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얼마 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던가! 날씨에 기대치 않던 반전이 있듯이, 우리 사회에도 그런 반전(反轉)이 있기를 바란다.
연일 사우나탕 같이 덥고 습한 대기 속에서 마스크도 벗지못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생활고와 감염의 위험 속에 마음 조리며 하루하루 견디어내며 살아가는 것만도 보통일이 아니다. 그것도 모자라서인지 일부 개신교 광신도들의 행태와 히포크라테스 선서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는 식의 기득권 집단의 횡포는 간신히 서있는 서민들을 난폭하게 밀쳐 넘어뜨리는 폭력이다.
개신교 광신도나 국가의 위기 앞에서 제이익만 도모하는 의사집단을 보며 병중에도 제일 무서운 병은 정신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병에 걸린 본인에게 피해가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지 나아가서 전체 공동체, 나라까지 파멸시킬 수도 있는 게 정신병이다. 공관복음은 예수가 제자들을 모은 이유를 보통 3가지로 든다.
예수와 함께 머물며, 병자를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며 마귀를 쫒아내기 위해서로 요약한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마귀를 쫒아낸다는 측면은 이제껏 잘 다뤄지지 않았다. 근대 과학적인 세계관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면서도 고의로 숨기며 친지와 지인들을 감염시키고 온갖 모임에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성서가 말하는 ‘마귀들린 사람’ 이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율리히 벡이 말하던 “위험사회”가 실감이 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몸과 마음이 곤궁해질 때 비로소 제정신이 든다. 그렇듯 마귀를 쫒아내려면 무엇보다 먼저 제 정신이 들게 해야한다. 궁즉통(窮卽通)이라 했으니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 국가적인 위기상황임을 실감하여 ‘깨시민’이 될 때 위기상황은 타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