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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23:29

영혼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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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이레네(서울)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면 할머니가 계시는 서산 큰 아버지 집으로 내려갔다. 파란 하늘과 멀리 보이는 산. 집집마다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흰 구름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련한 나의 기억과 오버랩 되며 티베트의 작은 산동네 니이마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산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씨족공동체처럼 사는 그들은 함께 모여 손으로 밥을 먹고 집안의 대소사를 논의한다. 주님의 만찬을 보는 듯 했다.

 

그 동네 사람들은 평생에 한번 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신들의 땅이라고 불리는 성지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산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주인공인 조카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삼촌의 손에 어른이 되었다. 부모 같은 삼촌의 소망은 순례를 가는 것이고 이를 알고 있던 조카가 먼저 가족들에게 삼촌을 모시고 떠날 것이라고 발표한다. “순례는 타인을 위한 기도의 길이야”라고 하며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겠다는 노인. 살생을 너무 많이 했다는 백정.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입학 전 소녀까지 각자의 이유와 희망을 간직하고 세 가족, 11명이 길을 떠난다. 영화를 보는 나까지 12명을 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생각하며 몰입했다.

 

삼보일배를 하며 2,500km에 달하는 거리를 1년 안에 되돌아오는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입학 전 소녀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지만 엄마의 설득에 약도 안 먹었다. 임산부는 병원에서 출산을 하고 돌아와서 남편과 번갈아 가며 아이를 업고 이어 나갔다. 얼어붙은 길바닥 위에 온 몸을 붙이고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모두 반복해 나아갔다. 이들의 간절한 믿음에 코끝이 뜨거웠다.

 

수레가 빠져 못쓰게 되어도 상대방에게 먼저 안위를 묻고, 지나가던 이웃은 빠진 수레를 보고 집으로 초대해 따뜻한 차를 대접한다. 드디어 성지에 도착해서 11명의 순례자들은 그들의 교주에게 축복을 받는다. 고모 집에 머물며 고모의 기도도 대신해주고 여비를 마련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고요히 죽은 노인의 장례도 치른다. 이방인은 없었다. 어디에 있어도 이들은 서로 형제자매였다. 나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물을 건너기 위해 윗옷을 벗고 삼보일배를 하며 그들은 집으로 향한다.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이제는 서로 웃으며 한다. 돌아가는 길은 봄이었나 보다.

 

영화가 끝나고 자매님들 함께 걸으며 어디선가 펴져오는 라일락의 향기에 영화의 감동을 담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 봄. 나의 순례는 어디쯤에서 멈춰진 것이 아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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