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주 글라라(광주 글방)
"난 엄마는 안 될래. 엄마는 너무 힘든 것 같아."
저녁 설거지를 함께 하던 큰딸아이의 말이다.
급하게 장 볼게 있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마트에 갔다.
사들고 온 물건들을 정리도 못한 채 라면 끓일 물을 냄비에 올려놓고 그 사이에 옷을 갈아입었다.
9시에 한 타임 수업을 또 해야 하니 시간에 쫓겨서 종종거렸다.
반찬 없는 밥이라 라면을 끓이면 꽤 괜찮은 반찬이 된다.
몸에는 해로울지 몰라도 한 끼 국으로는 딱이다.
수업하기 전에 설거지를 끝내려고 서두르는 나를 보고,
큰애가 엄마는 안 되고 싶다고 한 것이다.
비단 오늘 이 상황만을 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오늘 처음 한 소리도 아니다.
다함께 놀이를 갔다 와도 끼니를 해결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은 엄마인 나다.
청소, 빨래 등 집안일에 책임은 바로 주부인 나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은 나다.
쇼핑을 할 때도 다른 식구들 것은 맘에 들면 사는데,
가격만 보고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것은 엄마인 내가 필요한 물건 앞에서이다.
딸아이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에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되면 힘든 건 사실이니까.
『82년생 김지영』속 김지영도 그랬다.
김지영의 엄마 오미숙도 그랬다.
여자는 희생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배려해야 하고,
얌전해야 하기에 여자는 힘들다. 엄마는 더 힘들다.
『82년생 김지영』은 78년생 작가가 대한민국에 사는
82년생 보편적 여성의 삶을 옮겨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누군가 써놓은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의 넋두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듯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넌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 (중략)
“당신은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고리타분한 소릴 하고 있어?
지영아, 너 얌전히 있지 마! 나대! 막 나대! 알았지?”(105쪽)
졸업을 앞두고 김지영은 입사원서를 여기저기 넣어본다.
그러나 합격의 소식은 없고 김지영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놓여 있다.
이를 본 아버지의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라는 한 마디에 엄마 오미숙의 분노 섞인 대거리다.
‘나대! 막 나대!’라는 말에 웃음도 나왔지만 속이 다 후련했다.
시대는 변해가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달라졌다.
특히 ‘워킹맘’들의 사회적 복지와 배려가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더 많은 공평함과 상대적 평등이 적용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이러한 변화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참음의 미덕’을 발휘하는 여성보다는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용기 내는 여성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내화를 던진 사람이 김지영이 아니라고 말 해준 친구,
급식 먹는 순서가 불공평하다고 건의한 유나,
선도부 교사에게 남녀 차별적인 복장 단속에 항의한 친구,
바바리맨을 잡아서 파출소로 넘긴 친구들,
위험한 상황에 빠진 김지영을 도와준 처음 본 여성,
할 말은 하는 김은실 팀장 등 그들의 부당함에 대한 항변과 당당한 요구가 없었다면
여성 인권에 있어서는 지금보다 더 후진적인 대한민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그러한 부당함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당당하게 정당함을 요구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다른 얘기일지 모르지만 난 촛불집회에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지지하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에게 더 많은 힘이 필요할 때도 난 아무 힘을 보태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은 그들을 응원했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갖고 살았다.
난 어딘가에 힘을 보태야 할 때 늘 마음은 있으나 행동하지 못한다.
무리지어 행동하는 곳에, 숟가락 하나 얹듯이
그 구성원 안에 들어서면 되는데도 난 그러하지 못했다.
그런데 목소리를 직접 내야 하는 일이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변하고 싶다.
마음속에 품었던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보고 싶다.
내 안에 있는 정의를 표현하고 싶다. 유나처럼 왜 복장 단속에 차별을 하는지 따지고 싶다.
치근덕대는 남자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김지영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어느 정치가의 말을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유는
주저하다 흘려버린 소중한 것들이 내 안에 많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 빙의가 된 듯한 김지영이 그가 되어,
김지영 자신을 대변하는 말을 할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자신의 힘듦을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끙끙대던 김지영이
다른 이의 목소리로 자신을 위로하고 보호하려 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편적 여성이고 보편적 엄마이다.
나도, 그리고 너도 그 보편적 엄마이다. 이제 조금씩 용기를 내어보자.
우리 서로를 위해 나의 목소리를, 너의 목소리를 내어보자.
김지영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