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네이 글방

다네이 글방 회원들의 글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2018.02.05 21:41

여 정

조회 수 28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미정 데레사 (부산 글방)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위의 글은 빅터 프랭클의「죽음의 수용소에서」증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소제목 안에 들어 있는 문장이다.

이 글을 발견하고 나서 조용히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오랜 시간, 수없이 질문하며 찾고 헤매었던 답을 발견한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고 항상 진리로써 답을 준다.

그 초대에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느냐는 자신의 몫이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전화를 받는 남편의 얼굴이 환해진다.

초등학교 여자동창들이 토요일에 부산에 온다는 전화였다.

점심을 함께 하며 얼굴을 보자는 전화였다.

나도 함께 초대받았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함께 다녀서 그런지,

반생을 훌쩍 넘는 나이임에도 참 끈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이 주는 밥상에서 점심을 먹고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걷기로 하였다.

부산 오륙도에서 동해안을 걷는 길을 해파랑길이라 부르는데,

‘해운대’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부산구간 1코스 중 4.7km를 걸을 것이다. 2시간 30분이면 된다는데,

걷는 속도를 보니 4시간 쯤 걸릴 것 같다.

 

발밑으로 절벽과 바다가 보이는 오륙도 스카이 워크에서는 사진 찍는다고 바쁘다.

해맞이 공원을 지나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옷을 너무 입었는지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 농 바위가 보인다.

전면 전경이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있는 돌부처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마 고기잡이 나간 배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였으리라.

밭골새와 치마바위, 그리고 어울 마당을 지나면서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최종 목적지인 동생말로 가기 위해서는 구름다리를 건너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 잘 모르는 남편의 여자동창들 앞에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저 앞에 구름다리4가 나타났다.

맨 뒤에 가겠다고 하고 모두를 먼저 보냈다.

산 쪽을 쳐다보며 게처럼 걷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구름다리3, 2를 겨우 건너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구름다리1을 바라보며 ‘이젠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발자국도 뗄 수가 없고 앞으로 갈 수도 되돌아 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손잡이를 잡고 망부석이 되어 결국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앞서가던 남편이 뛰어왔고 앞을 가려주는 눈물 덕으로 어떻게 건너 왔는지 모르게 건너왔다.

구름다리를 건넌 것이 지금까지 3번 있었는데,

아직도 처음과 똑같이 죽음과 같은 공포를 느낀다.

 

나를 잘 포장하고 살아왔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이 공포를 견디기가 힘들다.

정신분석, 심리상담, 미술 심리상담, CPE(임상 사목 교육) 등

나를 알고 싶은 마음에 많은 공부를 하고 자격증까지 보유하였다.

태아 때부터 시작하여 유아 시절 등

과거에서 원인을 찾아 나가며 도움을 받았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어서

어떠한 악조건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인간은 조건 지워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나의 고통의 원인에만 머물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삶의 목표를 다시 점검하고 의미를 찾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나는 다시 구름다리에 도전하리라.

밑바닥이 보이는 케이블카도 다시 타 보리라.

물속에 얼굴을 묻고 수영을 해 보리라. 스카이 워크도 걸어 보리라.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포기하고 뒤로 빠지려는 나를,

끝없이 격려하고 인문학의 매력을 알게 해주신

다네이 글방의 지도 신부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로고 테라피를 통해서

‘지금 이대로 의미를 향하여’ 걸어 갈 용기를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온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0 다네이 글방 file mulgogi 2017.11.27 1674
89 마치면서 file mulgogi 2019.11.14 619
88 감사의 말 mulgogi 2018.06.28 531
87 대게와 꽃게 mulgogi 2019.11.03 515
86 그녀의 밥상 mulgogi 2019.10.20 492
85 밥 비비는 소리 mulgogi 2019.10.28 483
84 명절 생각 mulgogi 2019.10.13 439
83 사진말-겨울 나그네 file mulgogi 2017.12.07 423
82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 mulgogi 2018.03.19 387
81 다네이 글방 test file passionist 2017.11.25 381
80 예수님과 함께 걷다 file mulgogi 2019.09.17 380
79 디모테오 순례길에서 만난 ‘참나’ file mulgogi 2019.08.11 370
78 사진말-어둠 file mulgogi 2018.06.27 347
77 영혼의 거울에 비춰진 심미안 mulgogi 2018.04.04 342
76 잊지 못할 수녀님 mulgogi 2018.03.26 338
75 공소지기 file mulgogi 2017.12.18 338
74 사진말-봄비 file mulgogi 2018.03.15 336
73 봉헌하는 삶 mulgogi 2018.06.11 324
72 사진말-자기 자리 file mulgogi 2018.06.20 322
71 세탁기, 안나 카레리나, 빨간 고추 file mulgogi 2019.09.10 31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