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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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에게는 예전과 달리 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하고 있어서 도시락에 얽힌 추억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 배고픈 학창 시절에, 도시락은 가장 큰 위안이며 즐거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기도 전에 도시락을 다 까먹고 젓가락만 들고 다른 친구들의 도시락을 전전하는 얄미운 친구들도 있었지만, 학생들 가운데 더러는 정말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하고 점심시간이면 수돗가에 나가 물로 배를 채우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서로서로 한 숟가락씩 모으면 금방 도시락 한 개가 새로 만들어져 굶는 친구의 점심을 마련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 숟가락의 밥을 모으면 한 그릇의 밥을 만든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사랑이 현실이 되곤 했었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 내용과 똑같지는 않지만 아주 유사한 전개 과정을 우리는 독서 열왕기에서 듣습니다. 비록 나눠 먹은 양식의 양과 사람 숫자는 복음과 차이가 나지만 엘리야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배고픈 당신 백성을 먹이십니다. 엘리사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온 양식을 받아 시종에게 <이것을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2열4,42)고 말합니다. 그러자 시종이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4,43)하고 되묻자,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느님의 사자로서 충실히 하느님의 뜻을 받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자 몰려든 사람들을 돌보시기 위해 모처럼 마련한 휴식도 포기하시고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물론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Jn6,2) 이런 군중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당신 손수 하느님 나라의 식탁을 마련할 계획을 작정하시고 넌지시 필립보에게 물으셨습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Jn6,5) 미쳐 예수님의 깊은 의도를 헤아리지 못한 필립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6,10))이 넘는 군중을 먹일 빵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말씀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6,7)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필요했기에 필립보의 대답은 이미 이런 생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반신반의하면서도 안드레아는 예수님께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6,8)라고 말씀드립니다. 분명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턱없이 부족했겠지만 <불가능이 없으신 주님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감을 보이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는 안드레아의 표현도 필립보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필립보와 안드레아는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에서 나온 현실적인 대답이며 제안이었지만, 두 사도 모두 자기 한계와 인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의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이미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산법은 두 사도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도 흔히 빠지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두 제자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시고자 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앞세워 해결책이 없다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전처럼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가난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필립보와 안드레아처럼 세상의 굶주린 사람 앞에서 ‘나 한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무엇을 변할 시킬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서는 실망하고 포기해 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무리 작고 하찮더라도 먼저 믿음을 갖고 어린아이처럼 기꺼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놓기를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아주 적은 것으로도 장정만도 오천 명이 넘는 군중들이 먹고 남을 만큼 풍족하고 풍부하게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음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먹고도 남을 것을 마련하실 방법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십시일반의 정신이었습니다. 나누는 곳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고, 나누는 곳에 풍요로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나눔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우리 눈에 부족해도, 나누는 우리의 실천이 하느님의 축복이 되고 풍요로움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을 때 모든 이가 함께 다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식량이나 물품이 풍부한 시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여러 날 동안 예수님을 찾아 몰려온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분명 자기 먹을 것을 준비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 틈에서 자기 먹을 빵을 어린아이처럼 내어놓을 용기가 어른들에게는 없었을 뿐입니다. 서로가 자기의 가진 빵을 움켜쥐고 있을 땐 모두가 부족하지만, 가진 것을 내어놓으면 모두가 충분히 먹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없는 어린아이가 내어놓은 빵과 물고기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였고, 예수님께 듣고 배운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실천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는 사랑의 기적을 스스로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빵의 기적은 나눔의 기적입니다. 나눔의 기적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실천해야 하는 삶이며, 나눔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원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 곧 살아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예전 마더 데레사가 인도 캘커타에 큰 고아원을 세우겠다고 발표하자 수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그 일을 하자면 막대한 공사비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부대시설비가 들어갈 터인데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수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문 기자가 물었습니다. <수녀님, 준비해 놓으신 돈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묻자 마더 데레사는 주머니에서 3실링을 꺼내 보이며 <가진 것이라고는 이것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기자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그녀가 농담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더 데레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습니다. <3실링으로 저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러나 3실링으로 하느님은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예수님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분을 믿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기적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배고프고 부족하지만 먼저 내어 놓음으로써 기적을 체험하는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도 그것을 구실 삼아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빵을 던져 주고 그것을 미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거짓 사랑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거짓 사랑에 대한 유혹 앞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능력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만족을 채우는 방책方策으로 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을 베풀 때 겸손하지 못하면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엘리사와 달리 당신께서 사람들 안에 이루어 내신 빵의 기적이 단순히 육신의 배를 채우는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빵을 찾도록 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인 기적보다도 더 큰 기적, 당신의 몸과 피를 다 내어놓으시고 목숨마저 내어놓아 마련하신 영원한 생명의 식탁을 준비하십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자기 나눔의 극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빵과 물고기를 내어놓았던 어린아이처럼 당신의 몸과 피 곧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나눠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와 성혈로 자신을 완전히 나누어주심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평화의 끈으로 묶어 주십니다.(에4,3) 나눔은 하나가 되게 합니다. 성체의 나눔은 <나와 너>가 하나가 되게 합니다.(에4,4~6참조) 믿음으로 성체를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쓰시고자 하실 때 우리는 독서의 바알 살리사에서 온 사람처럼 그리고 오늘 복음의 아이처럼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놓고, 주님께서 뜻하신 대로 활용하시도록 은혜를 청해 봅시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영성체송. 시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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