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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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4주일부터 계속해서 요한복음 6장이 낭독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부활 2주간 평일 복음에서도 낭독되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가르침 곧 성체성사의 심오한 신비를 설명하고 있고, 반복 중첩되는 표현이 많아서 강론하는 사제로썬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힘든 복음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회에 예수님의 독특한 식사법을 먼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식사법엔 두 가지 두드러진 점이 있습니다. 첫째 그분은 혼자 드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으며, 둘째 그분은 누구하고라도 특히 소외된 이들과 함께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두 가지 활동을 한데 묶어 그것을 예수님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채찍질처럼 휘둘렀습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Mt11,19)라고 말입니다. 와서 먹거나 마시지도 않고 죄인들을 책망했던 세례자 요한과는 달리, 예수님은 언제나 먹고 마셨고 죄인들을 식탁의 벗으로 환영하셨습니다. 혼자 먹는 것이 그렇게도 예수님께는 불편하셨나 봅니다. 

 

예수님은 종종 홀로 기도하시고 혼자 활동하시기도 하셨지만 혼자 드시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기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였고 누가 초대하든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곧 예수님에게서 식탁은 아빠 하느님처럼 사람들과 친밀한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장소였습니다. 이는 곧 아빠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혼인 잔치(=Lk14,15~24) 비유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람들과의 친교와 사랑에 굶주리고 계신가를 드러내 보이신 비유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14,15)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Jn4,3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할 때면 메뉴에는 언제나 <빵>이 있었으며, 그 빵은 바로 <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자신>이며, 이 생명의 빵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영적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은 물론 예수님을 통해 아빠 하느님과 사랑의 친교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이시며>(6,51.48), <생명의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으며, 영원히 살 것입니다.>(6,50.51) 이 말씀은 훗날 최후 만찬에서 성취되었으며, 부활 이후 당신의 발현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이 빵을 땔 때야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바로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의 전 맥락은 엘리야가 가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대결 후 승리하여 그들을 전멸시켰지만, 이를 듣고 자신을 잡아 죽이고야 말겠다는 이제벨의 복수가 두려워 엘리야는 멀리 도망칩니다. 그렇게 담대한 엘리야는 한 맺힌 이제벨의 복수가 무서워 졸장부처럼 줄행랑을 쳐 싸리나무 아래 누워 주님께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1열19,4)라고 울부짖습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광경을 우리는 보고 있지만, 이것이 엘리야의 본래 모습이며 우리의 감춰진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兩面性(=한 가지 사물에 서로 맞서는 두 가지의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느님의 힘을 받을 때 엘리야는 예언자답게 대담하고 용감했지만, 권력자의 힘에 눌려 소담小膽하고 유약한 도망자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가르멜 산에서 호기와 용기는 연기처럼 흩어지고, 급기야 두려운 나머지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자의 처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런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신 주님께서는 그의 나약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를 일으켜 세우시어 빵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한 다음 호렙 산까지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로써 그의 여정은 권력자를 피해 도망하는 도망자의 길이 아닌 하느님 앞에서 참된 자신을 만나러 나아가는 순례자의 순례길이 됩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1열19,5.7)고 하는 오늘 독서의 표현은 주님의 천사가 두려움에 떨다가 잠든 엘리야에게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놓아두고서는 흔들어 깨우며 하신 재촉의 말입니다. 그런데 <갈 길이 멀다.>는 표현은 비록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 하느님이 계신 곳까지 나아가야 하는 엘리야는 물론 우리를 향한 호출이며 초대의 말씀처럼 다가옵니다. <갈 길이 멀다.>는 표현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사실 2018년 겨울 광화문 현판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문구입니다. <이게 누구의 숲인지 알 듯하다. 그 사람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 멈춰 서서 자신의 숲에 눈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내 조랑말은 나를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 근처에 농가라곤 하나 없는데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서 연중 가장 캄캄한 이 저녁에 길을 멈추었으니. 말은 방울을 흔들어 댄다, 뭐가 잘못됐느냐고 묻기라도 하듯. 그밖의 소리는 오직 가볍게 스쳐 가는 바람 소리, 부드러운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그렇습니다. 우리네 삶 앞에 놓인 삶의 무게는 아름답고, 어둡고, 깊지만 우리 또한 엘리야처럼 해야 할 일이 있고, 잠들기 전에 도달해야 할 삶의 길이 멀지라도 일어나서 묵묵히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1열19,8) 가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서 엘리야를 손수 먹이고 마시게 한 다음 생명의 장소 호렙 산으로 이끄셨으며, 더 나아가 엘리야가 나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시고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직접 지시하여 주십니다. 삶의 고달픔으로 지쳐 쓰러진 엘리야를 천사를 보내 깨워 일으켜 주셨던 하느님은 이제 하늘에서 당신 아드님을 우리에게, 세상으로 파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6,41)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이제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갈 길이 먼 우리를 흔들어 깨우시고 먹여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6,44)고 선포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언급한 ‘마지막 날’은 우리 육적 생명이 멈추는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기 직전의, 마치 엘리야처럼 우리 어둡고 지친 날을 말합니다. 아울러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로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심으로 어제의 묵고 낡은 옛 자아가 죽고 생명의 빵을 먹음으로써 새롭게 거듭 태어난 날이며 다시 시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나 행업이 아니라,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 이끌어 주신 아빠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 안에서 살아 가십시오.>(에5,2)라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처럼 주님의 은총과 사랑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배경을 전제하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고 좀 더 사랑의 신비 깊이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한 살아있는 빵이란 표현은 표현 그대로 生命 곧 살아 있는 상태의 실재성을 말합니다. 즉,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다는 실재성 말입니다. 그 실재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숨 쉬는 생생한 빵이요, 그 빵을 먹음으로 배고픈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생생한 음식입니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빵은 자신을 죽여 그 빵을 먹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결국 이 살아있는 빵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바로 예수님의 살, 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 당신 자신의 몸을 생명의 양식인 빵, 즉 성체가 되시어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먹혀질 존재가 되신 것입니다. 성체는 이 성체를 모신 사람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엘리야가 지친 몸을 추스르고 움츠렸던 상태에서 영으로 깨어 일어나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도록 빵을 먹은 다음 기운을 회복한 것처럼, 우리 또한 생명의 빵이며 주님의 몸을 먹음으로써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도록 일어나야겠습니다. 아직도 길은 멀고 도달한 그곳은 아득하기만 하지만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빵을 먹었으니 힘차게 일어나 아버지의 집을 향해 나아갑시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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