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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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싸우지 마라. 다만 마음을 옆으로 내려놓아라.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혹은 <마음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리 잡도록 하라>는 말을 저는 자주 사용합니다. <모든 상황, 모든 기쁨과 슬픔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육조 혜능 선사는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자기 마음속 소리에 귀 기울이라! 결국 마음이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참된 정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손을 씻고 목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행위가 나오는 그 마음을 씻는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막스 비어 작품 중 <행복한 위선자>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로드웰은 아주 비양심적이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야비한 사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만 봐도 불쾌하고 두려워서 피하곤 했습니다. 이 악인이 어느 날 미엘이라는 순결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로드웰은 사람들이 자기가 무섭고 야비하다는 것을 알고 피해서 도망가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처자와 결혼하고 싶었던 로드웰은 세상에서 가장 거룩해 보이고 가장 인자해 보이는 가면을 만들어 쓰고, 미엘에게 청혼하였고, 마침내 로드웰은 미엘과 결혼하였습니다. 사랑한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된 로드웰은 자기의 본래 성격이 튀어나와 행복한 결혼생활이 위험해질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야비하고 비양심적인 성격을 애써 누르고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어느 날, 한 친구가 로드웰을 찾아와 아내 앞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그만 벗겨 버렸습니다. 이상한 것은 가면을 벗기면 그 아래 야비하고 흉측한 얼굴이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나타난 얼굴은 가면과 똑같이 선하고 너그러운 얼굴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왜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져 묻습니다.(Mr7,1.5참조) 순수한 물음이 아니라 비난이 담긴 도전적인 지적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청결이나 위생을 고려했기에 한 지적이 아니라, 단지 지켜야 할 규정이나 관습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지켜야 했던 당시의 몇 가지 규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적인 규정들에 얽매인 그들을 ‘위선자’라고 하시며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행위는 예수님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7,8) 사람이 정해놓은 규정을 하느님의 것처럼 지키면서, 먼저 지켜야 할 하느님 사랑의 계명은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법의 올바른 의도와 정신을 망각한 채 외적인 규정만을 존중하는 신앙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술로만 하느님을 섬기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섬기며, 사람의 규정을 따르지 말고 하느님의 계명을 따를 것을 예수님은 촉구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맞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불러 하느님의 시선에서 세상의 <깨끗함과 더러움>, <정과 부정>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수수께끼 같은 비유 형태로 가르치십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7,15) 지극히 간단명료한 비유였지만, 이번에도 예수님께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제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비유를 통해 전하고자 한 뜻을 풀어 설명해 주십니다. 밖으로부터 사람 안으로 들어간 음식이 자연적인 소화 과정을 거쳐 배설 작용을 통해 다시 외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음식의 소화와 배설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 <정결>과는 무관한 하나의 생리현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특정한 동물과 음식을 <부정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땅 위에 사는 모든 짐승 가운데 너희가 먹을 수 있는 동물은 이런 것들이다. …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고, 그 주검에 몸이 닿아서도 안 된다. 그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레위 11, 2.8.47) 

 

이는 본디 그들이 살았던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적합한 음식물과 부적합한 음식물을 구별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규정이 나오게 된 기본정신을 잊고, 규정 자체에 집착하고 더욱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정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본디 음식물 자체는 모두 깨끗하다고 말씀하시며, 중요한 문제는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과 욕구가 나오고, 그것이 사람들을 오염시키고 전염시킨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참된 모습이 내면의 오염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뒤틀리게 되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 열두 가지를 열거하십니다. 거기에는 불륜·도둑질·살인 등과 같은 외적인 행위뿐 아니라 ‘탐욕·악의·시기와 같은 내적 행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생각(내적 행위)>(7,21)이라는 말로 통칭하십니다. 마음속 생각에서 시작하여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 바로 외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느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속 생각부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선하고 올바른 것들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정결한 것이 아무리 많이 들어온다고 해도 결코 거룩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날마다 마음을 닦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잘 닦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야고 1, 21) 

 

그렇습니다. 위에서 인용했던 <행복한 위선자>의 로드웰처럼,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추한 모습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날마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 모습이 바뀔 수 있습니다. 정결은 청결이 아니며 청결이 곧 정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손을 씻고 화장을 고치며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마음을 씻는 일에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매일 손을 씻고 화장을 고치듯이 내 마음 상태를 들여다본다면 정말 아름답고 정결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채워질 때 외모가 한층 빛나게 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복음과 성체를 통해서 매일 마음 닦기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말씀이란 거울에 비추어서 내 마음을 성체로 화장하다 보면 우리도 언제가 주님 얼굴을 닮을 수 있고, 주님의 마음으로 바뀌게 되리라 믿습니다. <주님, 당신의 천막에 머무는 사람은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시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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