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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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다시피 저는 작년 11월 말부터 혼자 안성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모든 것을 혼자 하려니 좋은 면도 더러 있지만 뭔가 부족하고 불편한 면도 많습니다. 함께 살 때는 주방 자매님이 식사를 준비해 주었기에, 제 몫은 열심히 준비해 준 음식을 형제들과 함께 맛있게 먹으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 입맛에 맞는 국을 끓이고 반찬을 준비해서 먹고 있지만,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을 느낍니다. 여성들은 공감하겠지만 밥하는 사람의 행복은 식구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단지 식사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준비하고, 사랑을 나누는 자리이기에 밥상은 단지 밥만을 먹는 순간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한 가족임을 깨달아 가는 시간이고 자리라고 봅니다. 

오늘 성체와 성혈 축일을 맞아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글의 줄거리는 천사 ‘미카엘’이 하느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세상으로 추방되어 ‘세몬’이라는 구두장이와 함께 살면서 하느님이 주신 3가지 질문, ‘첫째로 인간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셋째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다시 승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질문 ‘인간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미카엘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자신을 보살펴 준 세몬과 마트료나 부부 안에서 찾게 되는데 그 답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둘째,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세몬의 구둣방을 찾아온 부자의 돌연한 죽음을 통해서, 미카엘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6년이 지난 어느 날 비록 엄마를 잃었지만, 쌍둥이를 이웃의 착한 아주머니가 거두어서 젖을 먹여 길렀는데, 벌써 여섯 살이나 되었고, 쌍둥이 딸은 어미가 없어도 이웃집 여인의 따뜻한 사랑을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미카엘이 깨달은 마지막 답은 ‘사람은 자신의 계획과 고민과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사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미카엘은 세 가지 답을 깨닫고는 하늘로 올라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의 기적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추측해보건대 즉 장정만도 오천 명 정도였다니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생각할 때, 제자들은 군중을 돌려보내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묘안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주님의 마음과 생각은 이와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9,13)라고 요청하십니다.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기적의 결말은 다음 표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9,17)

이 놀라운 5병2어의 기적은 우리의 계획이나 생각보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우리의 의지를 주님 뜻과 맞도록 내어놓을 때, 비로소 주님의 거룩한 영이 놀라운 변화를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배고픔을 빵으로 채워 주셨던 주님께서 이젠 순례 여정 속에 있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배고픔을 당신의 성체와 성혈로 채워 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배고픔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영적 배고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것은,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11,24)는 주님 사랑의 업적을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9,13)고 당부하신 것처럼 세상에서 아직도 배고픈 모든 이에게 사랑의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그분께서 마련하실 천상 잔치에 참여하고 일치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성체성사를 언어에 비유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의 울림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말이 되고, 말이 생각이 되고, 생각이 진리가 되듯이,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빵의 표지도 빵이라는 본질에서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로 변화돼 갑니다." 이 말씀은 성체성사의 신비뿐 아니라, 신앙인이 생명의 빵으로 어떻게 변화돼야 하는지 깨우쳐 준다고 봅니다. 같은 빵을 나누고 같은 잔에서 포도주를 나누는 이 단순한 행위에는 그저 배고픔을 채운다는 의미만 담겨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행위가 단순히 육신의 배고픔을 없애기 위한 행위만 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은 자신의 존재를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걷는 사람이라는 동반자Companion이라는 단어는 ‘함께Com’라는 단어와 ‘빵Panis’라는 단어가 합쳐져 ‘빵(밥)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인생의 길을 함께 간다는 것이고, 나의 존재를 함께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것은 먹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호 간의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일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먹는 일은 생존의 기반이기에 밥을 함께 먹는 일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생명의 나눔이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나누는 친교와 사랑의 주고받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마음 안에 받아 모신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삶과 생명을 함께 함을 전제합니다. 우리 내면 저 깊은 곳에 함께 계시는 주님 현존이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되도록 우리를 이끄신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은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바로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겠다는 응답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빵이 되셨다면 우리도 이웃을 위해 빵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빵과 포도주는 우리 안에 녹아 스며듭니다. 동화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도 우리 안에 스며들어 주님과 우리를 일치시켜 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람, 곧 그리스도의 혈육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영하는 행위는 살아계신 그분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통해 주님의 생애와 말씀을 내적으로 되새기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뜻과 하나가 되기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잘 아는 마더 데레사 성녀가 한국에 오셨을 때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마더 데레사는 ‘하루에 두 번씩이나 영성체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듣고 보니 하루에 미사를 두 번 참례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아침 미사 때 성체를 모시면서 예수님과 만나고, 그 후 하루 일을 하며, 즉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면서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예수님을 두 번씩 만난다는 것이지요. 소외당하고 죽어가는 이들과의 만남이 두 번째 영성체라고 이야기하던 마더 데레사 성녀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오시는 주님을 우리가 언제 만날 수 있습니까? 내 것을 나누고 이웃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때 그곳에서 이웃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 한다고 해서 모두가 거룩해지고 모두가 주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주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는 주님의 몸을 모시게 됩니다. 주님의 몸을 모시면서 진심으로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주님과 일치되어 사랑의 삶을 살고자 결심한다면, 마더 데레사 성녀와 같이 어려운 이웃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힘겨운 삶의 자리에서도 성체와 성혈을 통해서 자기 전부를 내어놓으신 주님께서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충만한 은총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오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 사랑을 나누면서 일상의 삶 안에서 풍성히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여러분은 이제 무엇으로 살아가렵니까? 마더 데레사 성녀는 “성체는 바로 나를 지탱해 주는 음식이기에 성체 없이는 나의 봉헌 생활은 하루 한 시간도 지탱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성체를 정성껏 받아 모시면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알렐루야”(복음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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