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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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시작한 제32회 도쿄 올림픽이 벌써 중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무더위 속에서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자신이 갈고닦은 기량을 발휘하고서 안전하고 무사히 모든 경기를 마치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런데 1964년 도쿄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때의 일입니다. 올림픽 경기가 열릴 주 경기장 공사를 하기 위해 근처 집들을 헐게 되었는데, 지은 지 3년 된 집을 헐던 중, 인부들은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벽에 도마뱀 하나가 못에 박혀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 도마뱀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건축할 때 그랬으니까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 도마뱀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잠시 공사를 중단하고 사람들은 그 도마뱀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며칠 동안 관찰했는데, 놀라운 것은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을 것을 가져다가 거기 와서 먹여 주고, 곁에서 같이 자는 겁니다.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비록 하찮은 동물, 도마뱀이지만, 그렇게 몇 년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먹여 주고 함께 외로움을 달래 준 다른 도마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요즘 고독사로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을 듣다 보면 음식을 먹지 못해서도 죽지만, 외로워서도 죽는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기에, 육체는 자양분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듯이 인간의 영혼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적 자양분을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우리가 먹는 자양분은 주로 음식입니다. 영혼은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자양분을 먹어야 합니다. 육체는 건강한데 영혼이 병들어 있다면, 그 원인 또한 충분한 자양분을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삶이 무의미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이유가 영혼이 충분히 자양분을 섭취하지 못해서 병들었기 때문이겠죠. 영혼이 굶주림을 호소하고 영혼의 갈증을 느낀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이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풀 수 있는지 잘 모르기에 불안과 허무에서 벗어나려고 오히려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것에 의존하고 탐닉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은 더욱더 심각해질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영혼이 필요한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 음식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실마리나 동기를 제시하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 영혼의 양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마치 못 박혀 벽에 붙어 있는 도마뱀에게 다른 도마뱀이 그의 배고픔과 아픔을 채워주기 위해 먹을 주고 곁에서 함께 잠을 자주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이런 우리의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알아주고 채워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얼마나 영적으로 목말라하는지, 얼마나 배고파하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Jn6,27)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빵의 기적 이후에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6,26) 군중이 예수님을 찾았던 이유는 눈에 보이는 빵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보이는 빵의 표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혼의 양식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직도 세상적인 썩어 없어질 빵만을 찾고 있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신 것입니다. 마치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보는(=見指忘月견지망월) 군중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군중은 눈에 보이는 그리고 곧 사라져 없어질 것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보이는 것을 넘어선 믿음을 요구하시는 데 반해서 군중들은 세상적 표징, 보이는 기적만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도 어쩌면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만 찾아다니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화가인 피카소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예술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할 뿐이다.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작품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 의해서만 살아 있다.> 피카소가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렸다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예술가의 출현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보이는 것만 추구하면, 세상적인 표징만을 요구하는 신앙생활로 마감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인생을 그리기 시작하면 바로 그날부터 우리의 삶은 새로운 희망의 삶으로, 세상을 바꾸는 삶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기서 문득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왜 찾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신가? 사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의 삶이 기쁘고 행복할 땐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주말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놀기 위해 갈 때, 주일미사나 매일 바치는 기도를 잊거나 생략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주님을 잊어버리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올 땐 가르치지 않아도 주님을 찾습니다. 즉 절실하게 무엇인가가 필요할 때만 주님께 미사 봉헌이나 희생 그리고 기도를 바치는 우리는 바로 빵의 기적만을 보고서 예수님을 찾았던 군중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빵입니다. 주님께 다가가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으며, 주님을 믿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 점을 잊지 않고 지금 당장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빵을 먹은, 영원한 생명의 사랑을 체험한 아오스딩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빵을 사고 싶을 때 동전을 지불한다. 가구를 사고 싶을 때 은전을 지불한다. 그리고 토지를 사고 싶을 때 금전을 지불한다. 그러나 사랑을 사고 싶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불해야 한다. 사랑의 값은 당신이다.> 영원한 생명의 빵을 거저 얻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의 값으로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함을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 먼저 당신 삶의 모범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처럼 나 역시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비움이나 낮춤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빵을 얻게 되어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을 꿈꾸게 된 우리에게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4,22-24) 분명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빵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우리 또한 생명의 빵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겠죠.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가장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 자신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비워야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빵을 우리에게 먹이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낮추실 대로 다 낮추셨고 자신의 계획이나 뜻을 다 비우셨습니다. 그랬기에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빵인 성체의 신비이며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지상에서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양식, 그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다시금 우리는 세상의 음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먹고 나누어야 할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낯선 땅, 죽음의 땅에서 탈출하였지만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배고프자 모세에게 원망하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에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내려 주셨습니다.>(탈16,1313-14참조/시78,24)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6,35)고 당신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만이 인간 생명의 허기짐과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음식이며 음료이십니다. 이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그분에게 나아가야 하며, 그분에게 나아가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빵의 기적을 행하신 그날 밤, 호수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가 <나다! 에고 에이미. 두려워 하지 마라>(6,20)라고 하신 하느님이시며, 그분이 바로 <내가 생명의 빵이다>(6,35)라고 자신을 사랑으로 내어 주신 분, 사랑의 하느님, 생명의 하느님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시7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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