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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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읽었거나 들어서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이 높은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교향악단 단원들과 연습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연습을 훌륭히 마치고 나자 단원들은 토스카니니의 열정적인 지휘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그에게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박수갈채와 환호가 멈추자 토스카니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박수갈채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바로 베토벤입니다.” 그렇습니다. 토스카니니의 겸손한 표현처럼, 세례자 요한도 ‘박수갈채와 환영’을 받아야 할 분은 자신이 아니고 예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대림 시기의 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분이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실 때가 되자 자신의 임무가 끝났음을 알고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기에 자신이 머물고 있던 과거의 자리에서 물러나 예수님께 새로운 자리를 기꺼이 내어 드립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또 다른 훌륭한 조연인 엘리사벳 역시 메시아의 오심을 깨닫고 기쁨 속에서 성모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잉태한 어머니 마리아께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두 분께서 상봉하는 대목을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본디 아이를 갖지 못하던 여인인데 하느님의 돌보심으로 세례자 요한을 잉태합니다. 한편 마리아는 동정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지요. 그런데 혼인 이전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왜 엘리사벳을 찾아갔을까요 ? 누군가의 보호와 격려가 필요했기 때문일까요 ?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는 동일한 처지에서 만들어진 연대감이 마리아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이끌었을까요 ? 어쨌든 하느님의 신비하고도 놀라운 계획을 몸소 체험한 두 사람의 만남 또한 하느님께서 미리 계획한 일일 것입니다. 마리아는 ‘서둘러’ 엘리사벳의 집으로 갔다고 루카는 전합니다.(1,39)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유다 산악 지방으로 올라갔으니, 사나흘쯤 걸리는 거리로 젊은 처자라고 해도 쉽지 않은 여행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여행길을 나선 것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리아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 인사하자,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놉니다. 그리고 엘리사벳도 기뻐하며, 성령으로 마리아가 임신한 아기가 온 인류의 ‘주님’ 임을 알아봅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1,40) 장차 태어날 요한이 오실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것처럼, 엘리사벳도 마리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에게 자신을 낮춥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께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1,42)고 고백합니다. 우리 또한 매일 성모송을 외울 때마다 엘리사벳과 동일한 마음으로 어머니 마리아께 인사해야 합니다. 여기서 엘리사벳이 언급한 마리아의 복됨은 세속적인 의미의 복됨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아쉬운 것 없이 호강하고 자라서 대학 졸업한 여자, 돈 잘 벌고 지위 높은 신랑을 만나서 똑똑한 자녀들을 낳고 여유 있게 사는 여자들을 복된 여자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런 부류의 여자들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어머니 마리아의 일생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십자가의 일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엘리사벳으로부터 그리고 오늘 우리로부터 복된 여인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복됨은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말대로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믿었기에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비워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기에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 것은 아름다운 얼굴과 단정한 용모, 남다른 재능과 재주 흑은 상당한 재력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 구원사업의 도구로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은 마리아가 이런 것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과 겸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마리아의 겸손과 믿음이,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게 하여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 땅에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복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처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 역시 자신을 비우는 겸손한 사람, 그리고 하느님의 손길에 자기 자신을 모두 내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리아의 믿음과 겸손을 통해서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듯이,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기 지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참된 믿음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성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믿음으로 이집트의 재상이 될 수 있었고, 모세는 믿음으로 이집트 파라오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쳐 이겼습니다. 마리아 역시 믿음으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어 이 땅에 새 역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굳건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참된 믿음을 지닌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아는 겸손한 사람이 하느님 앞에 겸손할 수 있고 세상에 대해서 관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고신 극기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겸손한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믿음과 겸손을 지닌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어 역사하십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믿음과 겸손으로 자신을 가꿀 때 하느님의 사랑받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를 포함해서 오늘 현대인들은 믿음도 없고 겸손함도 없습니다. 신(神)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 대신에 돈과 권력을 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2012년 12월 22일은 마야 달력으로 세상 종말의 날이었지요. 그로인해 중국에서는 난리 아닌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또한 첨단 과학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도 없고 겸손함도 없는 인간들 가운데 하느님은 언제나 침묵하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는 곳에 하느님께서 하실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기고만장한 인간들의 오만함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오만과 불신앙이 초래한 불행한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향락과 안일을 추구하면서 돈과 재물의 위력을 믿고 과학 문명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는 오만한 현대인들 가운데서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리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곧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하신 이유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마리아가 복된 여인으로 칭송받는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작고 약한 어린 아기로 탄생하셨는지 그 신비를 묵상해 봅시다. 지금은 믿음과 겸손으로 우리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실 자리를 마련하는 시간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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