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조회 수 2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금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주님 안에서 살고 있음이 행복하십니까? 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 원인을 요약하면, <인간관계의 어려움(=사실 모든 불행은 사랑의 실패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함(=편견, 선입견, 비교와 경쟁 등)과 건강 문제> 때문입니다. 이 요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른 하나가 막히면 다른 것도 막힙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기가 막히고 혈이 통하지 않아서 힘겹게 살아가고,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 4장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님의 복음 선포의 핵심이 무엇이었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 자유를, 눈먼 이들에게 눈뜸을, 억눌린 이들에게 해방을...>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참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지만 실현되지 못한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재물(=재물에 속고, 재물 때문에 형제를 힘들게 하고 죽임)과 권력(=섬김을 위한 힘이 아니라 지배하고 종속하는 힘의 갑질에 휘둘림당해왔음) 그리고 거짓된 사랑에 상처받고, 욕심과 자만에 찬 독선으로 눈멀었으며, 죄-질병-사탄에 억눌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참으로 아프실 겁니다.

 

타볼 산의 예수님의 변모(마태17,1~6)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영광의 빛이며, 그 놀라운 광채를 제자들은 체험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표현에서 <좋다.>는 의미는 놀랍다, 참으로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 경험은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느님 영광의 빛 속에는 삶의 슬픔과 애통, 절망과 한숨짓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행복이 있을 뿐입니다. 밤과 낮이 확실한 것처럼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에 행복은 인간이 추구해야 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보성체회 창설자 윤을수 신부님은 영적 딸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행복한 수도자만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모든 수녀들이 참으로 주님 안에 살아가면서 행복하길 바랬습니다. 이로써 수도자는 자신의 존재와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부터 저 세상에서 누릴 영원한 행복을 앞당겨 살도록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행복하도록 도전하고 초대하는 존재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을 통해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메시지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행복 그 자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과 같은 이야기 아시지요? 천사들은 모든 것을 충분히 받았음에도 늘 불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이를 듣고 보신 하느님께서 마음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천사들 역시도 마음이 몹시 불편했나 봅니다. 이를 보다 못해 천사들이 긴급히 회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하려고 고심했나 봅니다. 오랜 토의 끝에 천사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숨겨두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행복을 숨겨 둘 장소로, 깊은 바다 심저深低에 그리고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천사들은 인간의 영악스러움(=靈惡)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두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행복은 인간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져 왔습니다. 중요한 보물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인간 존재는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욕구는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행복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살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참된 행복이 아닌 것을 추구하고 잘못된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세상적 행복은 오히려 인간을 점점 더 부자유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불행하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불행한 까닭은 바로 인간의 다음과 같은 그릇된 믿음 때문입니다.

1) 많은 것, 귀한 것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행복하지 않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의 소유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는 점을 확인해 줍니다.

2) 행복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다는 그릇된 믿음입니다. 사실 미래는 역설적으로 현재로부터 시작되고 결정됩니다. 예전 돌아가신 제 어머니를 꿈에서 만났죠.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엄마 그곳에서 행복하세요?”라고, 그러자 제 엄마 표현이 “신부, 피양 마찬가지여!”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저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3) 환경이나 타인을 변화시키면 행복하다는 그릇된 믿음입니다. 타인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변화를 노력하다 보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될 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행복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나 어떤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통해 우리가 의도하는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제2차대전 당시, 아유슈비치 포로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은 함께 참호를 파고 있는 사람들이 불평하고 투덜거리자 그 사람들에게 말했지요. “당신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입니다. 바로 여기 이 참호, 이 부대입니다.” 참으로 간단하지요.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한 처지에서도, 생의 어떤 처지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디에 있든, 있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 안에서 우리가 자신을 발견하는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고 힘겹게 하고 어둡게 할지라도 그 순간이 불행의 순간이 아니라 행복의 출발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느 바이올린 연주가가 연주할 때, 사람들은 그 연주가의 연주를 들으면서 울다가도 기뻐서 웃고 춤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한 한 사람만이 아무런 반응없이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미쳐나 생각했는데, 그는 귀머거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음악 연주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록: 꾸뻬씨의 행복 여행 참조)

 

하버드 의대 교수인 산지브 초프라(Sanjiv Chopra)는 행복이란 더 많이 갖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르마(Dharma,진리)와 행복, 그리고 목적이 있는 삶’이라는 제목의 ‘테드 토크’(TED Talk) 강연에서 “2,000만 달러 로또에 당첨됐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며 “연구 결과 로또 당첨자들은 1년 후에 이전 상태로 돌아갔고 일부는 이전보다 덜 행복해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로또 당첨자들은 큰 저택을 사고 환상적인 자동차를 구매했지만 3개월 뒤엔 그저 그냥 집이고 차일 뿐”이라며 “이는 그것(좋은 소유물)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초프라는 이런 현상을 ‘쾌락 적응’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적응이 되면 별다른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는 개념입니다. ‘쾌락 적응’은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도 하는데 사람들은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겪은 후에도 행복감이 비교적 빠르게, 이전의 안정적인 수준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초프라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더 많이 갖거나 자식이 더 잘 되거나 환경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람, 용서, 나눔, 감사로 누구나 이미 갖고 있고,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 카일 영(Kyle Young)은 초프라의 강연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4가지 요인’로 요약 정리했습니다.

1. 가족과 친구: 행복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신뢰할 수 있고 기쁨과 슬픔을 솔직히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초프라는 “친구는 현명하게 잘 골라 좋은 일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축하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미국 군의관으로 활동했던 비벡 머시는 2017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연구논문에서 “전 세계가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을 앓고 있다.”며 “강력하고 진실한 사회적 관계를 재구축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일터와 사회에서 계속 분리된 채 살아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 연구논문에 따르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건강에 미친다고 제시하였습니다. 반면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는 수명 단축의 위험과 질병 악화의 가능성을 낮추고 질병 회복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용서: 초프라는 “남을 용서할 줄 아는 능력은 미움과 같이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감정들로 인해 느끼는 부담감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로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는 1990년 27년간의 감옥생활에서 석방될 때 자신을 억압한 사람들에게 원망이 없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어떤 미움도 원망도 없었다.”며 “원망이란 독극물을 마시고 원수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답했습니다. 존스홉킨스 대학 '기분장애 성인 상담 클리닉'의 책임자인 캐런 스와츠는 “상대방이 용서받을 만하든 아니든,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에서 빠져나가도록 하는 의식적인 결정은” 단순히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 결과 용서는 심장마비의 위험을 낮추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하며 혈압과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3. 나눔: 초프라는 기부하고 봉사하는 것이 시간과 돈을 가장 충만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시카고대학과 노스웨스턴대학의 연구 결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한 실험에서 96명의 참가자에게 5일간 매일 5달러씩 주면서 마음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실험을 시작할 때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감이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5일간 자신에게 돈을 쓴 사람들은 점차 행복감이 떨어진 반면,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쓴 사람은 행복감이 낮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4. 감사: 초프라는 강연에서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감사의 언어를 모르면 결코 행복과 대화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심리학회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한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 같은 효과가 있었고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 잘 대처하는데 도움이 됐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강화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행복은 육체적인 즐거움이나 부나 권력 같은 물질이나 외부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과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우리의 선함에 맞는 삶을 사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초프라는 “시간을 들여 무엇이 감사한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삶에 존재하는 긍정적인 일들을 더 잘 인식하게 된다”며 “이 결과 인생의 부정적인 일에 덜 치우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초프라 강연에서 강조한 것처럼 그릇된 믿음을 성 아오스딩은 원죄의 결과로 인식했으며, 그로 인해 삶에 3가지 오류가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1) 우리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에 빠져 있고, 2) 우리는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는 탐욕에 빠져 있으며, 3) 우리는 이로 인해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가를 알면서도 이를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에 빠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행복론을 남겼고, 달라이 라마 역시 행복론을 남겼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것은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입구 돌에 새겨져 있는 글귀, <행복은 만족하는 것이다.>는 표현에 내포內包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만족(=사도 바오로의 표현은 自足이라 명함)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은 마음이 곧 문제이며 걸림돌입니다.

 

행복을 주제로 한 동화, <행복한 한스>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한스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금 한 덩어리 받았으며 그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하지 않았기에 그 금 덩어리를 말 한 마리와 바꾸고, 소와 바꾸고, 돼지와 바꾸고 또 거위와 바꿨습니다. 마침내 그는 돌덩이 하나와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꿀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받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것이 점점 힘들어지자 그 돌 덩어리를 물에 빠뜨립니다. 그때야 그는 비로소 가장 행복을 느끼는데 그 까닭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난 뒤 오는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며 마침내 그는 행복했습니다. 그 또한 처음엔 재산-힘-즐거움-성공 속에 행복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런데 차츰 많이 내려놓을수록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서서히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참 자신만이 남았고, 자신의 길에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동화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참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동화입니다.

 

각 언어권의 행복이란 단어는 본디 행복과 행운이 거의 동일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 Happy는, 본디 Hap에서 유래하였는데, 고대 영어에서 hap은 기회나 행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점에서 행복을 의미하는 단어는, 1) 어떤 주관적 느낌(예: 당신이 행복을 느끼면 당신은 행복하다.)이고, 2) 일시적 상태이며, 3) 운명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복음에서 말하는 행복은 바로 축복이며 지복(至福)입니다. 신학 성경엔 그리스어 Makarios로, 불가타 성경에선 라틴어 beatus(=축복받은, 행복한, 풍족한, 번영하는, 다행한)로, 행복과 축복이 혼용되어 사용합니다. 참된 행복 beatitudes, Blessedness는, 1) 주관적 느낌이 아니고 객관적 상태이며, 2) 일시적 상태가 아니라 영구적 상태이며, 3)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선택이지 운명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인의 행복의 관점에서 볼 때, 육체적이고 심리적(=쾌와 불쾌 중심) 고통은 행복이 아닌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성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통이나 불행은 단지 불행의 한 측면들만이 아닌 진복과 지복의 한 부분이고 분리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나 어떤 사물에도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인과 세상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시선과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잦다란 근심과 걱정의 연속인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마태6,34)는 권고는 걱정과 근심이 무가치하거나 쓸모없는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근심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다만 마음의 중심을 바꾸라는 것이지요. <먼저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곁들여 받을 것이다.>(6,33) 이렇게 참된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을 나는 새와 들에 핀 꽃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있음에 만족하고 다만 하느님의 섭리에 곧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인간은 요란스럽습니다. 모든 것을 상실한 구약의 욥은 인간적 측면에서 가장 불행했던 사람이었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이유는 이 땅에선 축복이, 하늘엔 영원한 행복이 마련되어 있다는 말씀에 희망을 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은 시편 1,1절처럼 <행복하여라!>는 권고로 시작하고 있으며 이를 과거에는 진복팔단(眞福八端)이라 하였습니다. 영어로는 Beatitudes라고 합니다. 이 영어 단어는 영어 <Be + Attitudes>의 합성어로, 풀이하자면 존재하는 태도, 곧 존재의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태도는 바로 예수님께서 아빠 아버지 앞에서 사셨던 삶의 자세요 태도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참된 행복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처럼 아빠 하느님 앞에서 취해야 하는 8가지 존재의 태도이자 마음가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아버지의 뜻을 준행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마음가짐이며 비전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듣기 위해 맨 앞줄을 채웠던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용서받고 치유받고 다시 삶을 삶대로 살도록 일으켜 세워진 사람들 곧 거리 한 모퉁이에 버려진 <라자로>(루16,19~31)들과 또한 후회만 남은 걸레 조각처럼 과거로 인해 눈물짓던 <마리아>(요8,1~11)들이었겠죠. 이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당시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구걸하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는 지경까지 가난해진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하늘 향하여,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께 깡통을 쳐들었으며 그게 그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들은 하느님 외에는 더 바라볼 데가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철저히 낮아졌습니다. 어쩜 우리 역시도 그들처럼 밑바닥까지 낮아질 때, 하느님 말고는 달리 바라볼 사람도 없고 손을 내밀어 의지할 사람이 없을 때 온전히 그분께 매달리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 역시도 텅 빈 손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구걸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내밀 때, 아빠 하느님은 우리에게 주님과 더불어 먹고 주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먹는 은혜를 내리리라 믿습니다.

 

타볼 산에서 보여 주신 주님 변모의 빛을 보고 행복을 느꼈던 제자들은 주님처럼 자신들의 전 존재로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참된 행복>은 이 땅에서부터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열어주신 가난과 슬픔 그리고 박해 가운데서도, 온유함과 의로움으로 살아가고, 자비로운 마음과 깨끗한 마음으로 평화를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길, 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는 행복해야 하는데 이 삶 말고는 다른 삶이 없습니다. 불교의 8正道처럼 진복 팔단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8가지 문, 입구입니다. 곧 행복에 이르는 문입니다. 주님은 당신 자신을 <나는 문이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10,7.9)고 말씀하셨습니다. 양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의미에서 생명과 사랑이 충만하고 완전한 곳으로 초대하신 것이며, 문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보고, 따르면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끝으로 복음성가가 아닌 조경수의 <행복이란> 노래 가사를 통해 잠시나마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은 누구로부터 파생하는지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주님)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사랑이 중한 것도 이제는 알았어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 <꾸베씨의 행복 여행>

여행이란 멋지게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이다, 이것이 여행을 통해 정신과 의사 꾸뻬씨가 찾은 행복의 비밀입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1.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5.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6.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7.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8.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9.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1.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산 속을 걷는 것이다.

12.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가지는 것이다.

13. 행복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4.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있음을 축하하며 파티를 여는 것이다.

16.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상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1. 사순절 특강3: 용서

    Date2022.03.17 By이보나 Views249
    Read More
  2. 사순 제2주일: 루카 9, 28 - 36

    Date2022.03.13 By이보나 Views104
    Read More
  3. 사순절 특강 2: 마음의 변화로써 회개

    Date2022.03.09 By이보나 Views246
    Read More
  4. 사순 제1주일: 루카 4, 1 - 13

    Date2022.03.05 By이보나 Views106
    Read More
  5. 사순절 특강 1: 파스카 신비

    Date2022.03.02 By이보나 Views185
    Read More
  6. 연중 제8주일: 루카 6, 39 - 45

    Date2022.02.26 By이보나 Views108
    Read More
  7. 연중 제7주일: 루카 6, 27 – 38

    Date2022.02.19 By이보나 Views127
    Read More
  8. 참 행복 강의 5: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할 것이다.

    Date2022.02.17 By이보나 Views173
    Read More
  9. 연중 제6주일: 루카 6, 17. 20 – 26

    Date2022.02.12 By이보나 Views120
    Read More
  10. 참 행복 강의 4: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Date2022.02.10 By이보나 Views337
    Read More
  11. 연중 제5주일: 루카 5, 1 – 11

    Date2022.02.05 By이보나 Views111
    Read More
  12. 참 행복 강의 3: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Date2022.02.03 By이보나 Views275
    Read More
  13. 연중 제4주일: 루카 4, 21 - 30

    Date2022.01.29 By이보나 Views111
    Read More
  14. 참 행복 강의 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그들의 것이다.

    Date2022.01.27 By이보나 Views518
    Read More
  15. 연중 제3주일: 루카 1, 1-4; 4, 14 - 21

    Date2022.01.22 By이보나 Views98
    Read More
  16. 참 행복 강의1: 행복한 삶

    Date2022.01.19 By이보나 Views217
    Read More
  17. 연중 제2주일: 요한 2, 1 - 11

    Date2022.01.15 By이보나 Views138
    Read More
  18. 주님 세례 축일: 루카 3, 15 - 16, 21 - 22

    Date2022.01.08 By이보나 Views129
    Read More
  19.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오 2, 1 - 12

    Date2022.01.01 By이보나 Views135
    Read More
  20.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카 2, 16 – 21

    Date2022.01.01 By이보나 Views16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