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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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6세 교황님은 교황청 평신도위원회 위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 것은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로 살아오면서 말 보다 행동이 절실히 필요한 계층은 어린아이들과 어르신들이라고 봅니다. 관구장 소임을 마치고, 2007년 노인 병원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점은 치매와 노환으로 입원해 계신 분들에게는 말이 필요하지 않고 다만 행동이 필요합니다. 환자들에게 미음이나 죽을 떠 넣어드릴 때면 흘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닦아주어야 합니다. 때론 남자 어르신들을 목욕이나 머리를 감겨드리고 나서 닦아드리면 어르신들은 “아유, 시원하다.”라며 좋아하십니다. 사람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 날마다 씻고 닦아야 하지만 혼자 힘으로 안 될 때가 있고 그래서 누군가가 닦아줄 때 고마워하고 좋아합니다. 어린애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프신 어르신들을 씻어주고 닦아주는 것은 사랑의 기본입니다. 간병인들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하루에도 수없이 환자들을 씻어주고 닦아줍니다. 저는 예전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사랑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가를 그리고 사랑은 언어 이전에 행동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수도원을 떠나 작년 12월부터 이곳 ‘안성요양병원’에서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이 최후만찬 이야기를 하는 그 자리에 세족례에 대한 이야기를 갖다 놓았습니다. 요한복음서는 복음서들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만찬에서 있었던 일을 새삼 길게 보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찬이 먹고 마시는 허례허식이 되지 않도록 성찬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발 씻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몸짓이며 행위였습니다. 발을 씻는 것은 종이나 노예가 하는 일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아비가일은 자신을 아내로 삼기 위해 다윗이 보낸 부하들에게 “이 종은 나리 부하들의 발을 씻어주는 계집종일 뿐”(1사무 25,41)이라고 스스로를 고백합니다. 발을 씻는 것은 이처럼 종의 고유한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고 그리고 유다 뿐 아니라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배반할 것을 알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은 죄를 지었어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죄를 씻어주시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겸손이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보여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께로부터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로써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아빠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생명의 전부인 사랑’을 주셨고, 예수님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전부인 사랑’을 끝까지 내어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껜 사랑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이 사랑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하신 것처럼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13,12~15) 예수님께서 받으신 사랑으로 제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셨듯이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하신 일을 그대로 되풀이할 것을 명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거저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즉, 그의 발을 씻으려하는 예수님의 호의를 거부한 것입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13,8) 어찌 보면 겸손해보이지만 실상은 사랑 받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꼭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을 요청하는 것도 사랑이요, 사랑이 만족스럽도록 사랑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용서할 수 있도록 자기의 죄와 더러움을 내보이는 것도 사랑이요, 씻기고 난 뒤의 그 기쁨과 고마움을 표함도 사랑입니다. 실상 우리와 주님의 관계는 죄와 용서의 관계요, 우리와 주님의 사랑은 씻기고 씻어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씻김을 거부하는 것은 단절이고,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발 씻음에서 죄인도 사랑하시고 죄인의 사랑도 받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고, 죄인도 사랑 받고 죄인도 사랑할 수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조차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13,8) 어쩌면 사랑을 하는 것보다 사랑을 받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받을 줄 알게 되면 주는 법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완전히 정화시키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전해주시는 방법은 ‘행동 곧 본을 보여줌’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제자들의 가장 더러운 발까지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즉, 당신의 사랑으로 제자들을 정화시키신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의 낮아짐과 희생이지만 그 희생은 상대를 깨끗한 본래의 하느님 모상으로 회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당신의 말씀으로 깨끗하여지기를 원하셨고, 실제로 발을 씻어 주심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뿐만 아니라 발을 씻김으로 정화되기를 거부한다면 결국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처럼 우리또한 예수님에게서 어떤 사랑으로 이룬 구원의 몫도 나누어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며 스승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셨듯이, 이제는 서로가 발을 씻어 주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잡혀가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고 나면, 예수님 없이 제자 공동체만 남게 되는데, 그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서로 발을 씻어주는 일, 곧 서로가 서로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 스스로를 낮추어 서로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그저 말로 가르치셨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고 난 이후에 그 말씀을 다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몸소 이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이 놀라운 일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복음서에 그대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명령하신 것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가장 훌륭한 스승님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사제는 형제자매들의 발을 씻을 것입니다. 이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세족례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당신 몸과 피의 성체성사를 다른 의미로 나타내는 행동임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머뭅시다. 비록 모든 형제자매들의 발을 다 씻지는 못하지만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손수 씻어주는 스승의 마음이 그 성체와 성혈에 담겨 있음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가슴깊이 새겨듣도록 합시다. 그리고 오늘 그 사랑의 성체를 내 안에 모시고 주님의 목소리를 기억하도록 합시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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