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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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때 듣지 못했던 요한 묵시록 강의를, 저는 광주 일곡동 수도원에 거주할 때 들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요한묵시록은 미래를 예언한 책이라기보다 당대 박해를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경입니다. 물론 지금은 박해의 시대는 아니지만 코로나 펜데믹으로 말미암아 급변하는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정체성 위기와 함께 내적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요한묵시록의 메시지는 아직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느껴집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에게 선포되는 제2독서 요한 묵시록 21, 1~5절의 다음 구절들이 제 마음에 새롭게 다가옵니다.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습니다.”(21,1) 요한이 본 이 놀라운 비전은 바로 우리가 보고자 하는 비전이며, 이 비전의 핵심은 바로 어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란 바로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입니다.”(21,2) 그렇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인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지 ‘외적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흐르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찾아가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느님께 신뢰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 갈 때 하느님께서 이루고자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를 통해 실현되어 가는 것입니다. 

어제 육신으로 죽으셨다가 오늘 영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파스카 은총은 당신께서 이루신 새 예루살렘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세상에 맞는 우리의 새로운 마음과 자세는 바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는 예수님의 유언에 이미 담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곧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여 준 것처럼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을, 남을 예속시키고 조정하는 사랑이 아니라 남을 자유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랑을, 남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사랑이 아니라 남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으며 이를 본받아 우리 또한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올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은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21,3)고 선언하십니다.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러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은 “하느님을 믿고 또 당신을 믿고”(요14,1) 기다린 우리에게 아빠 하느님은 더 이상 홀로 계시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사랑으로 사랑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시고 일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머무신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우리의 비참함과 울부짖음을 보고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거짓에서 참으로 이끌어 내신 후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당신이 거처하신 곳이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기에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입니다.”(묵21,4)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거처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안에 머무르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된 새로운 세상에 맞갖은 사랑의 삶으로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려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고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사14,22)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사14,27)는 언급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말씀이 입증되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었던”(13,31) 것처럼 새로운 세상에 맞는 새로운 삶의 태도인 사랑의 삶은 사람들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묵시록이 제시한 희망의 비전은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21,5)고 선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자체가 바로 새로움이며, 당신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참으로 새롭게 만드셨으며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한 존재가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부활의 새로움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진정한 새로움은 탄생의 진통을 겪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어야 하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이 그렇게 피어난다면, 하물며 인간존재의 거듭남에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수난과 죽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새로움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기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죽음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이야 말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과 ‘새로운 것들’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고 하셨으니 저희와 저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드소서. 아멘’ 

    다해(2): 요한 13, 31 - 35

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며 스승의 날이기도 합니다. 지난 5월 10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기 마련입니다. 이제 새 정부가 시작되면서, 오늘 독서의 예언처럼 제발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부활의 또 다른 모습인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묵시록의 저자 요한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이란 어떤 곳이고 어떻게 새로워지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요점은 새 예루살렘 시민은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랑으로 단장한 신부처럼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가치이며 하느님 나라의 율법인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랑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새 생명과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 사랑하며 살아 갈 사람들입니다.  

어떤 영혼이 지옥과 천당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지옥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에 가서 보니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인 줄 알았는데, 지옥에도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답니다. 지옥에 있는 젓가락은 1m가 넘었습니다. 다만 지옥의 사람들은 그 山海珍味를 먹기 위해 젓가락질을 부지런히 하였지만 젓가락이 너무 길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청나게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맛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도저히 먹을 수 없으니 다른 것이 지옥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고통, 그것이 바로 지옥의 고통이었습니다. 
이제 지옥을 둘러 본 사람이 천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천당에도 지옥과 똑 같이 山海珍味가 가득했고 젓가락 역시 1m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의 사람들은 그 산해진미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음식을 자기 입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에 집어 넣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광경은 지옥에서는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그냥 먹어보려고 안달했지만 천당에서는 대화도 아주 즐겁게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얘기는 실제 천당과 지옥의 얘기가 아니지요. 그러나 아주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은 장소적으로 다른 어떤 환경이 아닙니다. 같은 장소, 환경이어도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은 갈리고, 죽은 다음에야 가게 되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갈리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천당이고 지옥일 수 있습니다. 같은 세상인데 미워하며 살면 여기가 지옥이 되겠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면 여기가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이 됩니다. 같은 사람들과 사는데 미워하며 살다보면 악마가 되겠지만, 사랑하며 살게 되면 천사가 되고, 함께 사는 사람이 천사로 보이는 곳이 천국 생활입니다. 부활의 새로움이란 바로 이런 새로운 삶의 태도와 사랑의 몸짓입니다. 

‘사랑’이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가설은 사랑에서 ‘사’는 생각할 ‘사思’를, ‘랑’은 헤아릴 ‘량’(量)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곳이 지옥이 될 수 없겠지요.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을 하면 예뻐지고, 아름다운 사랑의 꽃이 피면 자신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예뻐지고 소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그 곳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오늘 독서 묵시록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21,3),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21,5) 이는 곧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넘치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희망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느님 나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머무시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손이 되어 우는 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의 발이 되어 슬피 우는 사람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치유해 주시도록 힘을 주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은 다른 어떤 장소 공간이 아니기에 죽고 난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고 지금, 여기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곳에 있습니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21,3.4)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 예수님은 먼저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먼저 보여주시고 당신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어느 본당에 아주 열심히 봉사활동하신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분은 매일같이 새벽미사에 참석하시고 열심히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성당의 여러 봉사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성당의 모든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살아 있는 성녀’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할머니의 장례미사를 치르고 난 후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성당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만큼 열성적인 신앙인이었으니 며느님도 그분의 뜻을 받들어 예비자 교리에 나오세요.’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흔들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신부님,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싫습니다. 성당에 다니지 않겠습니다. 제가 성당에 나가게 되면 죽어서 천국에서 시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될텐데, 생각만 해도 정말 싫습니다.’ 집 밖에서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되었던 그 할머니가 정작 함께 살고 있던 며느리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행위는 사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실례라고 봅니다. 

아빠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도록 누군가를 이끌어 오실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기회와 사랑할 힘을 주시고, 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실 것이며, 그 사랑으로 아빠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르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그 사랑으로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며,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심으로써 아빠 하느님 또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13,31참조)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대한 아빠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며’(마5,16참조), 이 사랑의 실천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5)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파문의 시작은 자신이 속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서 점차적으로 이웃으로 확장되고 파급되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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