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11.07 08:26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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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엄마의 깊은 속내를 잘 몰랐고 헤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형만 있고 나는 없다.>(김향이: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글)는 책의 내용처럼 저 역시도 엄마가 작은 형만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야속한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속담대로,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물론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열 손가락 중에 유독 늘 상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으면 그 손가락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당연한 일 같고, 열 손가락 중에도 유독 예뻐 보이는 손가락도 있고, 언제 봐도 안쓰러워 보이는 손가락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똑같이 깨물어도 원래 상처가 나있는 손가락은 더 아프게 마련일 것입니다. 예전 제가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싫고 힘든 단어가 바로 <편애>입니다. 이 속담이 말하고자 하는 뜻인 <편애는 없다.>고만 주장한다면 오히려 저는 이 속담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편애는 없다.>는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열 명의 자식 중에서 유독 몸이 약해 늘 상 병치레를 하는 자식이 어떤 자식이든 엄마는 똑같이 가슴 아프다.>는 의미를 더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이 죽고 난 뒤 엄마의 마음의 고통을 보면서, 늘 엄마는 우리 보다 작은 형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저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표현은 엄마의 마음이었으며, 하느님의 마음 곧 자비심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지난 화요일 복음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잔칫상이 꽉 차기를 바라셨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Lk14,23)고 종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잔칫상에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15,1~10)의 비유인 100마리의 양 중에 99마리가 왔다 해도, 은전 10개 중에 9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해도, 아직 채우지 않은 자리, 잃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찾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를 통해 예수님 당신 자신의 행동(=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고 잡수시는 모습)을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실 뿐만 아니라, 이런 기회를 통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편협 되고 그릇된 하느님 상을 고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리들과 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었지만,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여기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오히려 예수님과 군중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15,2)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에게도 일상에서 종종 드러나기도 합니다. 모든 면에서 참 좋은 사제이며 수도자인데...하필 저런 사람들(=사제가 어울려서는 아니 되는 부류는 지금 이 시대에서 누구일까?)과 늘 함께 하고 어울리지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오늘 복음의 비유(15,1~10)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비유와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의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비유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구원과 자비에서 제외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혹 사람의 눈에는 양 백 마리 중에서 겨우 양 한 마리를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며 호들갑을 떤다고 하거나, 은전 한 닢이 뭐 대수인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느님 눈에는 참으로 < 열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양 한 마리도, 은전 한 닢도 너무도 소중하고 잃어서는 아니 되는 귀한 존재와 같은 영혼입니다. 그러기에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헤매시다 기어이 찾으시고 나서 기뻐하는 목자의 마음이나, 은전 한 닢을 잃고 등불을 켜고 집안을 온통 쓸고 샅샅이 뒤져서 기어이 찾아내어 기뻐하는 여인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우리를 향한 아빠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아흔아홉 마리와 함께 있지만 언제가 우리도 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처지나 입장이 될 수 있으며, 잃어버린 은전 한 닢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가 양 우리 안에 있지 못하고 양 우리 밖에서 헤매고 있다고 해도, 세상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다 해도 주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찾아오실 것이며 기어이 찾고야 마실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 분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실 것이고, 찾고서는 우리의 잘못과 죄를 탓하지 않으시고 다만 다시 찾았다는 기쁨에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15, 6.9)하며 잔치를 베푼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아빠 하느님의 자비하신 마음을 기억하고 감사합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인간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설령 인간이 죄를 지었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제한될 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 다시금 강조하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이미지는 단지 거룩하신 분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은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자비는 곧 <慈는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요, 悲는 남의 슬픔을 함께 하는 슬픔입니다.>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슬픔이나 고통 앞에서 하느님은 중립을 취하지 않고 조금은 편애를 보입니다. 그러기에 전 이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의 뜻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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