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05.21 07:10

부활 제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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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평화를 주옵소서, 그 영원한 참 평화를 주옵소서.> 우리가 자주 부르는 성가 44번 <평화를 주옵소서.>의 한 구절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Jn14,27)고 당부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빼앗아 갈수도, 빼앗아 올 수도 없는 참 평화를 선물로 남기시고 이제 떠나가시려 합니다. 허나 <떠나가신다.>는 말의 무게 때문에 제자들은 이 말씀이 지닌 놀라운 내적 선물을 부활 때까지는 온전히 감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은 불안과 산란함으로 어찌 할 바를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끼지만 어떤 경우에서도 참된 내적 평화가 본인에게는 물론 더불어 사는 사람에게도 평화롭게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의 평화와의 단절과 포기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Lk12,51)와 <세상에 칼을 주러 왔다.>(Mt10,34)라고 말씀하신 깊은 의도를 알아 차려야 합니다. 참 평화는 거짓된 세상의 평화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하느님의 뜻과 전혀 무관한 지극히 인간적인 가치를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정의-자비-사랑의 실천보다는 勞使나 政堂 간의 힘의 균형, 이해관계의 타협, 전쟁이 없는 상태,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 기복과 무사태평 등을 흔히 평화라고 말합니다. 이 평화는 결국 소음이나 분란이 없고, 다툼이나 긴장이 없는 일시적인 평온을 평화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평화란 때론 칼로 절단하거나 불로 태워버릴 때 참 평화는 하나의 선물처럼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평화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죽는 것이요, 타인의 것을 자기 것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먼저 타인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비우는 것이며. 타인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낮추어 작아지고 섬기는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 요한23세 교종께선 우리가 평화란 선물을 받기 위해서 먼저 <네 개의 기둥, 진리-정의-사랑-자유라는 기둥을 세울 때 평화란 지붕을 선물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평화란 부활의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란 바로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주어진 선물입니다. 참 평화란 결국 고통과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평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부활의 선물, 곧 새로움입니다. 낡은 것, 어제의 것, 세상적인 것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것, 새로운 것으로 충만해 진 마음의 상태가 바로 평화입니다. 평화란 부활의 저 빈 무덤처럼 세상적인 것, 기복적인 것을 버리고 비운 그 자리에 성령께서 자리 잡으실 때 평화란 선물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근심걱정을 주님께 맡겨 드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 평화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가져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평화를 얻는 길이요, 부활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려라 불릴 것이다.>(Mt5,9)

 

주님의 평화로 충만한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는 그러기에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사14,22)라고 말씀하신 그 바탕에는 바로 환난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의 힘, 곧 주님께서 <內住> 하시는 힘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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