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05.24 08:00

부활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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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Jn15,17)는 예수님의 말씀은 쉬운 듯 싶지만 싶지 않은 말씀이고, 쉽게 실행할 수 있을 듯 싶지만 실행하기 무거운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무척이나 단순한 내용이지만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말씀입니다. 51년 전 저희 누나가 죽고 난 뒤, 누나의 책 가운데서 우연히 발견했던 책이 바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란 책이었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한 동안 제가 즐겨 읽던 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는 부분이 오래도록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그냥 제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삶을 되돌아보면 제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나 싶었고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존재로 저 자신을.... 그러기에 타인에게서 사랑받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게 무척이나 어설프고 어색하며 망설여 질 때가 많았습니다. <사랑받는다.>는 게 무척 불편하고, 그래서 누군가의 호의와 사랑의 초대에 <아니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으며, 누군가의 말처럼 마음은 정으로 가득하나 표현할 줄 모르는 매정하고 무정한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랑이 없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주님께서는 타인을 사랑하면 살아가도록 이 수도생활과 수도자로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의 이유를 이제 새삼스럽게 느끼며 감사하며 살려고 합니다. <네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뽑아 세운 것>(15,16)은 저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을 보고 맛들이게 하심이며, 나에 행동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저 자신의 존재로써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아 이제 저도 세상에 나가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사랑하면 살아라!>(15,12)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철부지와 목석같은 저를 끈질기게 사랑해 주셨기에 제 마음과 영혼을 향해 <내가 너를 사랑했었다.>고 단언하시면서 이젠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사랑하며 살아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말로써가 아니라 존재와 삶으로써 그 사랑을 보고 맛들이게 하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사랑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면 살아 갈 때 나는 <예수님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15,14)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시면서 사랑하며 살도록 재촉하십니다. 이는 단지 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사랑의 초대이며 호소이십니다. 당신으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함께 더불어 살고 있는 이들과 나누고, 함께 더불어 걸어가는 도반들에게 내어주기를 바라십니다. 당신께서 먼저 저희를 사랑하신 것처럼 먼저 사랑하고 끝까지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기 바라십니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곧 우리의 존재 이유이고 축복이며 당신에게 대한 사랑의 응답이며 감사입니다.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예수님께서 명령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한 분들이었기에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렇게 인정합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은 사람들입니다.>(사15,26) 사실 순교자는 예수님의 벗이며 친구들이기에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예수님과 참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님의 친구들과 유다와 실라스 편에 보낸 편지를 받고 안티오키아 교회 신도들이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15,31)는 것은 <사랑은 무거운 짐을 얹어 주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내려 주는 것이다.> 는 사실을 드러내 준 실례이었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정과 격려로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 교회가 더욱 끈끈하고 밀접한 유대를 굳건하게 하고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 그 밑바닥에는 <예수님과 성령의 사랑>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和而不同(큰 사람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바탕위에서 다른 사람과 조화를 도모하려 한다.)과 같음을 새삼 사도들의 모습에서 강하게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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