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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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메쥬고리아 성지순례를 할 때, 저는 이태리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 성당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통해 다시금 성체 기적의 오묘한 신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에 의하면, 8세기경 어느 날 바실리오 수도회 소속 사제가 란치아노 시에 있는 성 레곤지오에게 봉헌된 성당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감사기도를 바치면서, 그 수사신부는 성체 안에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의심이 들었나 봅니다. 그 순간, 성찬 전례를 위한 제병은 살로 변화였고, 포도주는 피로 변하여 응고되어 각각 다른 모양과 크기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졌다고 합니다. 그 수사신부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처음에는 그 사실을 숨기려 하였으나 더 이상 자신이 보고 만진 은총의 체험을 주체할 수 없어 몇몇 신자들에게 밝히게 되었고, 직접 목격한 신자들이 이 소식을 도시 전체에 전하였습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후 1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때의 성체와 성혈은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오고 있습니다.

 

1713년부터 오늘날까지 수정으로 만들어진 은제 성작에 보관해 왔습니다. 1970년 의학 전문팀에 성분 분석을 의뢰하였으며, 오도아르도 리놀리 박사가 성분 분석 후 <태초에 말씀이 계시었고, 그 말씀은 살이 되었습니다.>라는 전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답니다. 1) 성체 기적의 성체는 참된 살이며, 성혈은 참된 피이다. 2) 성체는 심장의 근육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3) 성체와 성혈은 사람의 것이다. 4) 성체와 성혈의 혈액형은 일치하며 AB형이다. 5) 성혈에는 일반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정상적인 단백질이 발견되었다. 6) 성혈에는 또한 염화물, 인,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 등의 미네랄이 소량 함유되어 있으며, 반면 칼슘은 더 많이 함유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이 말해 주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실제적인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면서 살고 있으며, 그분의 성체를 통한 현존과 결합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결합합니다. 하나가 됩니다. 흔히 엄마들은 아기들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표현을 다음과 같이 하더군요. 물론 요즘 사람들에게는 큰일 날 소리지만요. <아이구, 요것 콱 깨물어 주고 싶네!> 우리는 참으로 사랑하면 상대방을 먹고 싶거나, 그에게 먹히고 싶어 합니다. 그의 살 중의 살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말의 의미는 곧 <나는 너에게 먹히고 싶어. 내가 사는 이유는 바로 너야!!!>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기에 먹혀 지고 싶은 그분, 우리에게 먹혀져 우리와 하나가 되고 싶은 그분을 모시며 살고 있으면서도 영성체 후 신자들의 몸짓이나 표정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한 마디로 가관입니다.

 

빙헨의 힐데가르트 성년의 저서 <길을 알라> 2권 여섯 번째 투시에서, 교회를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말할 수 없이 값진 결혼 선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성녀는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투시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성체를 영하기 위해 사제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는 그들 가운데 다섯 부류의 상이한 집단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몸이 찬란히 빛나고 그들의 영혼은 사랑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몸이 희미하게 빛났고 영혼은 어두웠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몸이 뻣뻣하고 영혼은 인간의 여러 가지 죄 많은 행동으로 인한 먼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네 번째 부류는 날카로운 가시로 둘러싸였고 그 영혼은 나병에 걸린 것처럼 종기투성이였습니다. 마지막 부류는 몸에서 피를 흘렸고 영혼은 곧 썩어 없어질 시체와 같은 냄새를 풍겼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각자의 순수함과 신앙과 열망의 크기에 따라 은총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올바르게 영성체한 사람에게는 영성체의 은총의 효과는 크고 엄청납니다. 거룩한 삼위가 친히 오십니다.

 

제가 모셨던 전 제주 교구장이셨던 김창렬 주교님은 당신의 영적 일기에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성당에 모여 미사 참례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아라.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하는 그들의 겉모습에는 별 차이가 없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와 가지는 친교의 깊이나 그들과 내가 나누는 선물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 차이는 사람이 나를 얼마나 잘 알고 내 마음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며 또 내 뜻을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신심 운동이나 선교 활동에 참여하는 성의, 기도에 바치는 시간과 정성, 이웃 사랑과 봉사에 대한 열의에 달려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나에게 바치는 선물인데 이 선물 없이 내 앞에 나타나 미사에 참례한들 나와의 깊은 친교가 성립될 리 없는 것이다.> 주교님은 내적 태도의 차이를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누워 있을 때, 그리고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Lk17,35)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주교님의 눈에는, 성체를 영하러 나오고 들어가는 신자들의 외적인 모습이 가관이었나 봅니다.

 

이처럼 여러 상태의 사람들이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하지만, 그 고백의 진솔성을 믿을 수 있을까요? 참으로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아시면서 그런 고백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잖아요? 어느 랍비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저는 랍비님을 사랑합니다.>고 하자, 랍비가 그에게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아는 것인데 제가 무엇 때문에 지금 아파하는지 아십니까?> 라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지금 아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자녀들 모습을 보면 한사코 부모의 보호 밖으로 나가서 독립하려고 합니다. 독립적으로 따로 살고 싶어 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고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 분리가 부모와 무관하게 되기 쉽고, 부모가 자식을 위해 더 이상 해줄 일이 하나도 없거나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분리에 따른 상실의 아픔입니다. 부모는 비록 늙었어도 뭔가 자식의 힘이 되고 싶고, 자식에게 필요한 존재이길 바랍니다. 부모에게 사랑할 기회를 주는 게 효도입니다. 하느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거부할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것, 고백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과 찬미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로 한 지 다 아시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청할 때 하느님은 기뻐하시고 우리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왜 아파하시는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시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썩을 놈들이 하느님을 무시하고 사랑을 거부하니까 마음이 몹시 아프신 겁니다. 어쩌면 이런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계신 어머니 마리아께서 그런 까닭에 더 눈물을 흘리시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아오스딩 성인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심어 놓으신 것은 갈망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이데케는 사람의 근본적인 실존을 근심으로 보았지만, 아오스딩 성인은 갈망이 사람의 영혼을 형성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사람의 마음에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친교와 일치에 대한 갈망을 심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영원한 생명을, 사랑을, 진리를 갈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이지요.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의 행동을 단죄할 수 없지요. 어쩌면 우리가 보는 시선과 하느님의 보는 시선이 다르시겠지요. 그러기에 다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유다인의 하시딤의 가르침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밤새 카드놀이를 하느라 율법을 공부하거나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불만을 랍비에게 호소했습니다. 랍비는 퇴폐적인 젊은이들을 비난하지 않고 그들에게 대답하였지요. <젊은이들이 그런 열정으로 카드놀이를 한다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이제 열정의 방향을 하느님께 돌리면 됩니다. 그 열정의 방향을 돌리면 얼마나 독실한 신자가 되겠습니까?>

 

때론 우리 눈에 미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도 하느님의 시선에서 보면,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본래의 것을 찾기 위해 즉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하는 몸짓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이 갈망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자 본 위겔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먼저 와 계신다.>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분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를 입증해 주는 소녀와 아버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숲 근처에 사는 모험을 좋아하는 소녀가 어느 날 길을 잃었습니다. 아빠가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밤새도록 딸을 찾던 아버지가 바위 사이에 지쳐 잠든 딸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뛰어가자, 딸이 아빠를 끌어안으며 소리쳤습니다. <아빠, 드디어 아빠를 찾았어요!> 하느님은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찾으시고, 부르시고, 달려오십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눈을 비비고 손을 하느님께 내밉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를 찾고 계셨던 그분을 찾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찾으실 수 없을 만큼 깊은 숲은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 지쳐 웅크리고 앉은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모든 눈물, 그분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캄캄한 밤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되셨고,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구원계획을 당신 자신의 존재와 삶을 통해서 성취하셨습니다. 구원 상태는 인간이 하느님과 사랑으로 함께 친교를 나누고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써 우리는 구원된 인간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구원의 구체적인 실현은 치유입니다. 구원이란 말은 인간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모습이란 하느님과 함께 있었던 죄를 짓기 이전의 에덴에서 인간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치유라는 말도 상처 입은 인간이 그 상처의 치유를 통해 상처받기 이전의 본래의 인간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통해 일어난 치유의 사건은 상처받은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이며 사랑입니다. 성체의 모습으로 오심은 마찬가지로 우리 구원을 위함이며 강생의 신비를 구체화하고 지속하기 위함입니다. 구원은 죽음으로부터 해방이니, 성체야말로 죽음에서 구원해 주는 생명의 음식이자 구원의 음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Jn6.54)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 세상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하다면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살기 바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갈망은 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간 어떤 사람도 이 소망을 이 땅에서 이룬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오직 한 분 바로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극복하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15,55)고 노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인 사랑의 죽으심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도록 영생의 빵을 주신 것입니다. 흔한 말로 죽음의 치유책은 바로 죽음인데, 바로 예수는 직접적으로 죽음과 맞대면에서 죽음을 극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죽음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성체를 주셨지요. 성체는 죽음에 대한 치유이며 치료입니다.

 

또한 성체는 죄악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제주 표선 성당에 살면서 깨닫게 되었지만, 성당 주변이 감귤밭이었습니다. 감귤밭에 농약을 치면 병충해가 죄다 성당 마당의 감귤 나무로 몰려듭니다. 이처럼 사탄은 멀리 있지 않고 제단 밑에 많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영혼이 하느님으로 살려고 할 때 유혹이 더 심해지고 많아집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장사 없다는 표현으로 자주 사탄에 노출되면, 사탄은 전략적으로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5,8) 또한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연약한 인간이기에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하니>(Mt마26,41)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고 죄에서 승리하여 신앙에 항구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켜나가려면 하느님의 도우심과 특별한 보약이 필요합니다. 달이나 그 밖에 다른 위성에 가는 인공위성에 아주 특별한 연료가 필요하듯이 하느님 나라, 천국으로 가는 인간에게는 특수연료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보약과 연료로써 성체를 주신 것입니다. 성체는 인간이 오욕의 불을 끄고 칠죄종에서 벗어나게 하는 치료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을 굳세게 하고 튼튼하게 하는 보약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시선에서 치유 받아야 할 환자이며 상처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생 여정을 걸어오면서 영적인 상처와 마음의 상처 그리고 육체적인 상처로 병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성체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합니다. 프란치스꼬 살레지오 성인은 <신심생활입문> 2권 21장에서 치유받기 위해 영성체를 영하도록 간절히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너의 불완전함을 정화하고, 곤궁에서 벗어나고, 근심에서 위안을 찾고, 나약함에서 원조를 얻기 때문이다. 강한 사람은 영성체를 통해 약해지지 않고, 약한 사람은 영성체를 통해 강해진다. 병든 자는 건강하게 되고, 건강한 자는 병들지 않기 위해 영성체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병든 인간이 너는 너의 완전함이요 힘이며 의사인 그분과 자주 하나가 되어야 한다.> 힐데가르드 성녀가 어느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사적 영성체가 불가능할 때, 영적 영성체를 할 수 있다고 밝힌 부분에서 성체를 통한 치유의 방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주님의 몸을 열렬히 원하지만 성체를 영해줄 수 없을 때, 이 사람의 머리 위에 주님의 몸을 들고 그 몸 안에 성령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통해 아픈 사람의 영혼과 몸이 깨끗해지길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사제는 주님의 몸을 이 사람의 가슴에 가까이 대고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모 마리아는 당신의 아드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청하오니, 우리가 이 사람의 몸과 영혼이 거룩한 몸과 피를 통해 참된 신앙으로 정화되게 하여 주소서.>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성사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고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영혼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성화로 이끌려집니다. 인간의 영혼은 그것을 보낸 이를 곧 감지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믿음으로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부터 결코 물러나지 않습니다.

 

아울러 성체를 통한 치유의 구체적인 실례는 로버트 드그란디스 신부의 <미사를 통한 치유>라는 책을 참조하시면 좋으리라 봅니다. 다만 저의 지난 경험에서 의하면, 더 나아가 신학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적합한 치유 장소는 성당입니다. 성당에서 공동체가 함께 거행되는 전례는 단지 공적 예배만이 아니라, 그 전례에 영적으로 참되게 경배하는 신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유의 시간이라고 봅니다. 모든 장소가 다 거룩하고, 모든 시간이 다 거룩하지만, 특별히 전례 시간은 가장 거룩한 장소이며 시간입니다. 전례에 적절한 마음가짐은 성사의 사효성과 더불어 인효성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치유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조건 없는 선물, 사랑의 사건이지만, 이에 상응하는 조건은 치유 받고자 하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치유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예수님을 통해 치유 받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간청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체성사는 크리스챤 치유의 절정이다>고 예수회 조지 말로니 신부는 강조합니다. 그런데 미사 중에서도 성스러운 변화와 거양성체 순간 그리고 영성체를 하는 순간은 치유를 위한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시간입니다. 저 역시 사제로 서품받은 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미사를 집전했지만 참으로 제가 집전하는 미사가 특히 치유라는 관점에서 미사를 집전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1194년 영국의 그레노블 출신의 후고 성인은 거양성체를 하는 주교와 자신의 손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광채로 둘러싸인 <유난히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께서 축성된 제병 속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젊은 성직자는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80년대 중반 펜실바니아 핏츠버그 듀케인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때, 듀케인 대학에서 건너다보이는 십자가의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거주했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미국 진출 이후 예수고난회 첫 번째 수도원이며, 첫 번째로 성령을 체험했던 젊은이들이 함께 기도하던 성령기도회의 출발지가 된 유서 깊은 수도원입니다. 그때 수도원의 원장 신부님은 그 젊은이들을 지도하면서 성령 운동을 시작하신 분이셨는데, 미사 집전하실 때나 강론을 할 때의 분위기는 젊은 사제인 제겐 너무나 카리스마 넘친 분이셨습니다. 저의 우상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이 집전하는 미사에 자주 참석하고 강론을 듣고 하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분이 집전하는 미사 중에 거양성체를 하는 동안 그분과 그분이 들고 계신 성체를 에워싸고 있는 어떤 빛을 볼 수가 있었으며, 신비롭게도 그분과 겹쳐 움직이신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분을 좋아한 까닭에 착시였으리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겐 참으로 소중한 체험이었지요. 아무에게도 나누지 못한 이야기이지만 시간을 흘러 이런 기회에 저의 영적 체험을 나누면서, 이 체험은 바로 성체가 치유의 시간이며 장소라고 굳게 믿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기 전,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라는 응답은 치유와 연관되는 최고의 효험의 순간입니다. 아울러 <성체를 모시는 순간, 당신은 치유자이신 그분을 모신 것입니다.>라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처럼 그분께 온 마음으로 집중하고 한없는 감사와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입니다. 마치 두 남녀가 성을 통해 사랑의 절정을 체험하는 순간처럼 온전히 친밀한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 사랑의 떨림과 전율.... 이런 순간들의 신뢰와 사랑의 일치감은 우리의 치유를 위한 기도의 한 방법을 배우게 합니다. 그 열쇠가 되는 단어는 물의 파문과 빛의 파장 및 소리의 공명입니다. 3가지 파문, 파장, 공명의 공통점은 퍼져나감, 울려 퍼짐, 번져 나감이란 움직임입니다. 영성체의 순간에 마치 그분의 몸과 피가 우리의 온몸에 특히 부서져서 약한 부분으로, 의식과 무의식에 특히 상처받은 기억으로 영역으로, 특히 영적 상처로 물든 영혼까지 퍼져나가고 번져 나가며 울려 퍼지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이 또한 치유를 위한 좋은 기도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흔히 많은 영적 치유자들 역시 비슷한 영상화 기법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인간의 마음은 크게 두 가지 능력이 있는데, 그 하나는 민감성의 능력 Sensibility이며, 다른 한 기능은 응수성의 능력 Responsibility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오래 세월 동안 상처를 받고 살아 온 까닭에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버리고 차디차게 식어버렸기에 사랑을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적 민감성을 상실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원한과 비통과 거부의 심성으로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자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당신의 심장을 주십니다. 이로써 심장에서부터 퍼져나가고 번져 나가는 파장과 파문, 공명의 소리와 힘과 빛을 영상으로 상상할 때 예수님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이는 임상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칼 싸이먼톤 박사는 <다시 찾은 건강>이란 책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영상화 기법의 치유 방법을 사용한 임상 실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엑스레이로 찍은 그들의 암 덩어리 사진을 보여주고 난 뒤, 백혈구 세포 덩어리가 암세포를 둘러싸고 그것을 파괴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그려보게 하였지요. 그러자 그 죽은 암세포가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온 사례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은 우리에게 먹혀지고 싶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성체가 육체적 상처나 내적 상처나 영적 상처를 치유하여 주심을 상상하는 그것은 또 다른 신앙 고백이며 사랑의 행위하고 봅니다.

 

치유자이시며 의사이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굳은 맘 풀어 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병든 것을 고치십니다. 당신 손수 막힌데 뚫으시고 아문 것 풀어 주시고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드십니다. 이 모든 치유 활동을 주님께서 먼저 서둘러서, 주님 친히 일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신뢰에 찬 사랑으로 주님께서 내 병든 육체 안에서, 상처받은 기억과 마음의 내적 상처에서 빛으로 사랑으로 지나가심을 영상으로 바라보고 내어 맡기면 됩니다. <주님, 당신께 의탁합니다. 저를 당신 닮은 존재가 되도록 저의 몸과 정신과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오늘 치유하여 주심을 믿고 당신께 저의 몸과 정신과 영혼을 온전히 맡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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