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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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품받기 전 어느 날 수도복을 입고 우이동 명상의 집 정원을 거닐면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처음 본 자매님이 제게 다가와 갑작스레 <수사님은 참 행복하시겠어요?>라고 이야기를 걸어왔습니다. 당황한 저는 엉겁결에 <행복할 것이 뭐 있나요?>라고 답변하자, 그 자매는 저에게 <하느님과 함께 살고 계시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머리를 주먹으로 한 방 맞은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분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참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그녀가 찾고 있는 행복을 제가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녀가 제게 부러워하는 그 행복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총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느님은 모든 당신 자녀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엄마 살아계실 때, 어머니는 늘 저게 <신부 아프지도 말고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라고 자동 응답기처럼 반복하셨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늘 저의 행복을 바라시듯 자비이신 하느님은 더더욱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삶에서 겪고 살아야 하는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다가 당신 계신 곳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살아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모든 개인이나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별반 특별한 것이 없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불행한 개인이나 가정에서 불행한 것들은 셀 수도 없는 갖가지 이유가 있더군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바라는 행복은 거의 비슷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서도 변함없이 행복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상황에서도 탓을 돌리고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불행하더라고요. 결국 모든 게 뒤죽박죽한 상황과 현실에서도 행복과 불행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고, 행복과 불행을 선택하는 것은 어떤 누군가가 아니라 행복과 불행을 선택한 그 자신일 뿐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불행한 사람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만을 보기에 남과 비교하고 남과 경쟁하면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자신이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만족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고 봅니다. 

오늘 예언자 예레미야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사막의 덤불’의 이미지를 통해서 행복과 불행을 대조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행복과 불행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에, 어디에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의지하느냐 하느님께 의지하느냐, 육에 의지하느냐 아니면 영에 의지하느냐. 재물에 의지하느냐 아니면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경험과 하느님의 영을 받은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17,5. 7-8) 이런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을 전하는 의도를 제대로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에서는 여덟 가지 행복 선언이 산 위에서 선포하시는데, 루카 복음에서는 네 가지 행복 선언과 네 가지 불행 선언을 산에서 내려오시어 평지에서 선언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미움을 받고 누명을 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고,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칭찬받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당대는 물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을 완전히 뒤엎은 파격적이고 역발상적인 선언이며 가르침이었습니다. 사회 일반적이고 통념적인 행복의 관점은 가난보다는 부유함이, 슬픔보다는 기쁨이, 굶주림보다는 배부름이 행복의 상태이고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가르침은 단지 부자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도 큰 충격이었고 혼란스러움을 던져 주었을 법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가난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말씀도, 가난을 행복으로 알고 참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서 어디에서도 가난이나 슬픔, 굶주림 자체가 좋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행복은 가난, 슬픔, 배고픔 상태가 아니라 그런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시고 돌보아주시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환기하면서 자비하신 하느님께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독려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은 경제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비참과 소외 속에 뒤처지고 내버려진 상태 전반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이런 상태에 놓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였으며, 이들은 그야말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자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누구도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어 주지 않았고, 또 되어 줄 수 없음을 자각했기에 하느님께만 철저히 의지하고,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하고 슬프며 배고픈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가르침의 전제는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며 의탁하는 사람이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다.>라고 표현하신 의미는,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의존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의 무능과 무력, 없음과 약함을 인정하고 오로지 모든 것을 하느님께만 내어 맡기는 신뢰와 의탁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느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부유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의 부유함을 상속받을 것이며 부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부유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하느님을 의지해야겠다는 절박함 혹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가난한 사람들처럼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의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화도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역설적인 진리이며 그 역설은 반전된 상태로 실현된 상태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배부른 이들은 굶주리게 될 것이며, 웃는 사람은 울게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그리고 부자들은 불행하다고 말하는 이유 한 가지는 바로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 곧 가난한 사람들의 것>(루카 6,17)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 나라를 차지했으며 하느님의 위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 곧 ‘하느님께 신뢰를 둔 사람’은 이미 자신을 하느님의 다스림과 하느님의 사랑에 맡기고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행복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느님께 신뢰를 두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의지한’ 부유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배제되었기에 ‘이미’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사도 바오로가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15,19)라고 말씀하신 의도를 또한 마음에 새기면서, 행복과 불행을 선언한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모든 행복과 불행의 관건이라고 믿으면서 현세보다 내세에서 누릴 저 지복직관을 바라면서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맙시다. 

지금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예전 어느 자매가 저에게 했던 말,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음’이 바로 저와 우리 모두의 행복의 근본입니다.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지하며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며, 이미 하느님 나라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산다면 지금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고 행복하지만, 하느님과 살지 않고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이며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아직도 때론 가난하고 슬프며 배고플지라도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 됩시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화답송 후렴)

<세상은 불공평한 거 같으면서도 공평한 게 많다. 그중 한 가지는 마음만은 스스로 소중하다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것 백지 한 장 차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결정된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조금 부족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행복은 마음속에 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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