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08.07 07:24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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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면서, 예전과 달리 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눈이 좀 더 열리면서 성서의 이야기 또한 더 잘 이해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나안 여인에 대한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한 없이 자비로우시고 따뜻하시며 사람들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접촉하며 생명의 말씀으로 치유하시던 예수님의 입에서 어찌 이토록 인종 차별적 뉴앙스가 풍기는 냉정한 거절의 말씀이 터져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딸의 병고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 가나안 여인의 울부짖는 소리,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Mt15,22)라는 소리를 못 들으시지는 않으셨을 텐데도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 여인 때문에 성가심에 시달리다 귀찮아서 예수님께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15,23)고 여쭙자 고작 하신 말씀이,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15,2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비수가 되어 그 여인의 마음을 후벼 팠으리라 짐작합니다. 이해받지 못한 설움에 이방인이라는 거부까지 당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외견상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몰인정하게 그 여인을 대하시고 사람들 앞에서 흔한 표현으로, 위로는 못해주실 망정 그 여인에게 개망신을 주었습니다. 막말로 그 여자는 단지 마귀 들린 자기 딸 곧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사랑하는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했을 뿐입니다. 만일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낫을 수 없는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면, 어느 어머니인들 그 여인처럼 도움을 줄 사람에게 미친 듯이 매달리고 애원하며 하소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지극히 당연한 어머니의 심정이며 몸부림이라고 봅니다. 그런 여인에게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이지 자비로운 예수님답지 않게 느껴지며 거리감과 함께 실망감마저 느낍니다.
 
이렇게 그녀에게 모질 게 하신 까닭이란,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그 여인을 거절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육적인 치료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천상의 잔치에까지 그녀와 그 여인의 딸을 이끌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 여인의 마음에 천상적인 믿음의 씨앗이 이미 뿌려져 있음을 아시고 육신적 건강을 회복시켜 주려는 것뿐만 아니라 천상적인 생명을 얻고 또 얻도록 이끄시기 위한 <반전의 교육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반전의 교육방법이란 <당신의 외면적인 거절>을 통해 그녀의 가장 깊은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천상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냥 치료해 주었다면 그녀가 갖고 있던 영원한 생명을 향한 불씨에 불을 댕길 수가 없었기에 가장 극단적인 무시와 멸시를 통해 자존심에 상처를 줌으로써 그 어둠을 뚫고 영원한 생명의 잔치에로 그녀를 이끌기 위한 호출이자 초대였던 것입니다. 이는 단지 그 여인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것을 듣고 보고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본보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참으로 인간이 찾아야 하는 것은 단지 지상적 잔치 상에 주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천상적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깊은 의도를 모르는 채 그 여인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고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붓고 그 자리를 떠나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더 이상 물러갈 곳이 없었고 그 상처 입은 자존심을 억누르면서도 자식의 병을 고쳐야겠다는 일념으로 예수님 앞에 온전히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애걸한 것입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를 무시하고 저를 개 취급하셔도 상관없으며, 단지 제가 바라는 것은 큰 것(=겸상)이 아닌 아주 작은 것(=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으로도 족하고 족하오니 제발 제 자식 병만 고쳐주십시오.>(15,27참조)

 

드디어 극단적인 교육방법을 선택한 예수님의 의도가 그녀의 겸손어린 고백으로 결실을 맺는 순간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하고 그 여인이 대견스럽고 참으로 사랑스러웠으리라 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15,28)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으로 기적을 베풀고 관심을 쏟았던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 안타까워 하셨는데, 뜻밖에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에게서 그토록 크고 튼튼한 믿음을 보시고 얼마나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우셨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그녀의 딸을 치료하신 것만이 아니라 그녀의 무시와 멸시당해 찢겨지고 부수어진 그녀의 영혼을 치유해 주시고 하느님 딸로 거듭나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으로 인해 자존심 상하고 무시당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깊은 절망의 시간과 자리를 견디어 낼 때만이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그 순간이야 말로 세상에서 참으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될 것이며 참으로 참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한 없이 낮춥니다. 그녀는 개 취급을 받아도 개의치 않고 자신을 뜻을 이루기 위해 당당히 그런 무시와 맞설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 따위를 내세우면서 자신을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자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그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개도 될 수 있고 그것 보다 더한 것도 될 수 있음을 오늘 복음은 저희를 흔들어 깨웁니다. 오늘 만큼은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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