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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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제가 수도원에서만 생활하다가 제주 표선 본당신부로 파견되어 떠날 때, 어느 수녀님이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보내준 시가 바로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였습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길이 되는 사람’, 그렇습니다. 저도 그 길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새로운 곳, 안성에서 새 길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나 다른 환경 속에 살면서도, 저는 가끔 예전의 습관처럼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경향이 되살아나고 있는 저를 봅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결심하고 사는데도 때론 ‘라떼’를 말하는 제 모습을 반성할 때가 많습니다.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님에도, 선택의 가능성이 다양하게 열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저의 생각이나 느낌을 강하게 내세워 말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봄길이 되는 사람은 스스로가 봄의 따뜻함과 포근함처럼 모든 가능성을 믿고 단지, 사랑으로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겠지요. 그러기에 오늘 복음의 요한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었던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봄 길이 되어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천둥 벼락처럼 제 마음속에 울립니다. 

오시는 주님을 그리움으로 깨어 기다리는 우리에게 오늘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구원에 동참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하느님께 돌아섬, 곧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한 회개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본디 돌아섬을 뜻하는 회개 는 결국 인간이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모습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회개는 단지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이시요 생명이신 하느님을 향해 온 존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나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루카3,4참조)고 외칩니다. 광야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비록 천둥 벼락처럼 큰 소리인데, 판단과 단죄의 목소리가 아닌 사랑어린 위로요 격려의 부드러운 울림입니다. 다시금 그의 메시지를 희망으로 들어봅시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4-6)

그런데 복음에서 말하는 주님의 길을 마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길이란 본디 두 곳을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길이란 나와 주님 사이에 뚫려있는 길, 주님께서 나에게 오시고 내가 주님께로 가는 길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새로 내라고 하시지 않고, 이미 길은 나 있으니 그 길을 닦으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려는데 가로막는 것들을 치우라는 말씀이겠고, 다른 한 편은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려는데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하라는 초대로 들립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게 하고, 굽은 길은 곧게 하고,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라는 말씀을 어느 영성가는, 이 말씀을 우리 내면의 상태와 비교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곧 골짜기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로 인해 깊숙이 패인 마음은 아닌지, 산과 언덕은 끝닿은 줄 모르고 높이 솟은 교만한 마음은 아닌지, 굽은 길은 말을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비뚤어진 마음은 아닌지, 거친 길은 주변에 개의치 않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고집스런 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자신의 상처 받은 마음, 교만한 마음, 비뚤어진 마음, 완고한 마음을 메우고 낮게 하고 곧아지게 하고 평탄하게 만들어야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 필리피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 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1,9-11) 기도는 사랑의 소통이며 사랑의 앎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소통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되고, 이 사랑을 통해 우리가 누구임을 깨닫게 되며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좋은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 안에서 영광과 찬양을 드리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서게 이끌어 줍니다. 사실 주님의 구원을 알리는 표지로 소개하고 있는 이미지들, 말하자면 ‘높고 낮음’, ‘굽고 곧음’, ‘거칠고 평탄함’은 그 길의 상태 자체만으로도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 이미지가 던지는 심리적이고 영성적인 무시나 차별로 겪게 되는 부당함입니다. 즉 일상에서 개개인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훼손당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모두 깊이 상심하고 때로는 적개심마저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당하고 훼손당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서도 관심을 쏟지 않거나, 외면하고 살아간다면 이는 우리네 삶을 더 불편하게 하고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도록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몸소 그 길을 마련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젠 말이 아니라 주님처럼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이 되어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정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의 회개를 실현하는 길은 인권에 대한 우리 인식의 전환과 실천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27항>엔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들어보십시오. <온갖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 모든 행위: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을 해치는 고문, 심리적 억압과 같이 인간의 온전함에 폭력을 자행하는 모든 행위: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추방, 노예화, 매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 또한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이윤 추구의 단순한 도구로 취급당하는 굴욕적인 노동 조건: 이 모든 행위와 이 같은 다른 행위들은 참으로 치욕이다. 이는 인간 문명을 부패시키는 한편, 불의를 당하는 사람보다도 그러한 불의를 자행하는 자들을 더 더럽히며, 창조주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 것이다.>

끝으로 일본의 미쓰하라 유리라는 분이 쓴 시 <길을 만든 사람들>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맨 처음 길을 걸은 사람 훌륭해 험한 길 처음으로 걸은 사람 이름을 외울 가치가 있을 만큼 훌륭해 그 오롯한 자세 정말 아름다워 허나 그 뒤 이어 이름 따위 안 남을 줄 알면서도 꾸준히 길을 밟아 다지며 걸어간 이들의 소박한 걸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 이번 한 주간은 우리보다 앞서 봄길이 되어 걸었던 세레자 요한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이름 따위 안 남을 줄 알면서도 꾸준히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 길을 걸으면서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되어 주님을 닮아가는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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