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저는 독일의 유명한 코메디언인 하페 케르켈링이 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을 읽고 난 뒤, 한 동안 산티아고를 가고 싶은 열망이 강했지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사도 바오로의 체험과 겹치면서 <길>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강렬하게 제게 다시 닥아 옵니다. 지금도 하페처럼 수없이 많은 순례객들이 의심과 불안 속에 홀로 600km의 고독한 산띠아고 길에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이며, 하느님은 참으로 존재하는가? 존재하신다면 그 분은 어떤 분이신가?>라고 질문하면서 길을 걷고 마침내 그 해답을 찾으리라 믿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의 길에서, 인격적인 예수를 만났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적인 회심이나 개종이라는 피상적인 결과보다 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뿌리인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생명의 빛이신 그분의 비추심과 아빠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고,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귀의해서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2,20)고 고백하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성 아오스딩은 <너희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Jn6,55~57)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미암다.>는 <원인이나 근거가 되다.>는 뜻이며, 이로써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바로 하느님이시며, 아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게 당신의 파견의 목적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우리 역시도 <예수님의 참된 생명의 양식이며 음료인 당신의 몸과 피>를 모심으로써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존재 이유이며 존재의 근거가 되는 아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삶과 존재로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은 물론 영원한 생명도 얻지 못한다.>(6,53)고 단언하십니다.
다마스쿠스의 길에서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9,4),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9,5)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 바오로가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 만남 체험으로 <물과 성령의 세례를 받고> 사울에서 바오로로 거듭 났으며, <가던 길을 바꿔 새로운 길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으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고 선포하며 한 생을 주님의 증인으로 선택된 삶을 충실히 사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Mr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