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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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첫 순교자 스테파노 축일이었고, 오늘은 복음사가 요한 사도 축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히 사랑 받았던(Jn21,20) 제자입니다. 사도 요한의 축일을 지내면서 어제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을 성탄 대축일 다음 날에 지낼까 하는 의문의 연장선상에서 요한의 축일이 왜 성탄 팔일 축제 기간 내에 있을까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 요한과 관련된 복음이 많이 있는데 성탄시기에 하필이면 부활시기의 복음을 읽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그 까닭은 바로 사도 요한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사도이고,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20,2)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의 말씀, 생명의 말씀의 집필한 사도가 다름 아닌 사도 요한이기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 이 거룩한 축제일에 그의 축일을 지내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의 사랑의 신비를 꿰뚫어 보고 믿었던(요20,8) 사랑의 사도 요한에 대해 가장 잘 드러내주는 복음이 오늘의 복음이기에 교회는 기꺼이 이 복음을 선택한 것이라 봅니다. 우리 또한 요한처럼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보고 깨닫도록 사도 요한의 이름으로 그 사랑의 신비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도들 역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체험의 강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제 친 형제들 역시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조금씩 정도의 차이가 있고 기억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이렇듯이 모든 사도들 가운데서 유독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 사랑을 많이 받으신 분이셨고 그로인해 남과 달리 사랑에 일찍 눈을 뜨고 귀가 열린, 사랑에 뛰어나신 분이셨나 봅니다. 자신이 쓴 복음에서 요한은 자신 스스로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고 특별히 강조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고 표현한다는 것은 그는 분명히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이 자신을 자신이 되게 했다는 자기 확신의 고백이며,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분들의 일반적인 경향처럼 요한 사도는 분명 자존감이 강하고 자신감이 남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만큼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이며,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때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곧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음을 잘 드러내 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Jn13,23~24)는 기록을 통해서도 제자들 모두가 다 인정할 만큼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신 분이었나 봅니다.

 

무엇이 사도 요한이 그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받게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며 요한 또한 자신을 사랑해 주는 예수님을 다른 사도들에 비해서 훨씬 더 사랑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리라 봅니다. 사랑을 받았기에 사랑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사랑했기에 사랑받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받기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 좋은 예는 바로,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그 여정에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고 도망을 쳤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십자가 곁에는 몇 몇 여인들과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 곁에 사랑하시는 제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어머니와 그 사랑하는 제자를 영적 모자의 관계로 맺어 주셨으며(Jn19,25~27), 또한 오늘 복음(20,2~8)에서도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덤을 달려갔는데 그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20,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베드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어서 빨리 달려 무덤에 도달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복음이 굳이 이를 표현한 까닭은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란 이름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그리워하고 더 빨리 보고 싶은 열망 때문에 그렇게 신속하게 달려갔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높은 산을 뛰어 다니는 사슴처럼 그는 사랑하는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사랑에 의해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분이 계셨던 그 곳으로 재빨리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요한의 편지는 복음보다 더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구체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수님의 고난-죽음-부활을 목격하고 체험한 이후 요한은 예수님과 더불어 살면서 보낸 시간을 회상하고 숙고한 후에 쓴 서신이기에 그 글에는 그의 체험이 깊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1Jn1,1~2),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Jn4,14.16) 이렇듯 요한은 자신의 체험을 우리와 함께 나누며, 당신이 체험한 사랑을 살도록 초대하고 격려합니다. 여러분은 이 요한의 고백이 단지 머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요한은 사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눈으로 그분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직접 보았고, 귀로 그분의 말씀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으며, 자신의 손이나 가슴으로 그분을 숱하게 만지고 느끼면서 체험한 분이시기에 이 말씀에는 진솔함과 생생함이 묻어나오는 사랑의 절규이며 고백이자 증언입니다. 체험한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말씀이기에 우리는 요한의 소리와 글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때만이 그분의 사랑으로 사람이 되시고 가난한 우리와 함께 하신 그 분의 사랑을 듣고 만지고 맛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다면 성탄은 정말 <내용 없는 기념일>이며 <영혼 없는 축제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사랑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면서 그 사랑을 맛본 사랑의 사도 요한의 축일을 지내면서 그 사랑으로 사랑이 되어 오신 그분을 만나도록 오늘 교회와 복음은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 느끼며, 사랑은 오직 사랑 안에 머물 때만이 그 사랑을 보고 듣고 맛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사랑의 사도인 요한의 중재에 힘입어 우리 모두 다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도록>(에3,18~19) 청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전하는 또 다른 사랑의 사도가 됩시다. 참사랑은 우리를 주님과 하나가 되게 그리고 우리 서로가 하나가 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어제 스테파노 성인은 사랑의 완성인 순교 곧 피 흘림의 순교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했다면, 오늘 요한은 피 흘림이 없는 온 생애를 통해 사랑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친교를 이루셨습니다. 사랑의 순교를 통해서든 사랑의 삶을 실천함으로써든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만이 사랑이신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 오늘 사도 요한의 축일을 맞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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