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20.01.05 01:58

주님 공현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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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公顯)이란 <공식적으로 나타내 보이다.>는 뜻으로서,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한 구세주로 드러나심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Mt2,1~12)에는 동방의 박사들이 등장합니다. 동방박사들의 과거의 낡은 것으로부터 떠남,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 대한 경배 그리고 선물 봉헌은, 바로 금년 한 해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러기에 동방박사들은 우리가 살아야 할 모습이고, 한 해 동안 걸어가야 할 신앙 여정의 본보기라고 봅니다. 하늘에서 특별한 별 하나를 발견한 동방 박사들은 고향을 떠나 길을 나섭니다.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그들도 떠났습니다. 이러한 떠남과 버림의 여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행길에 직면하는 많은 어려움 그리고 중단하고자 하는 유혹 등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길을 걸어 마침내, 유다의 도읍에 임금이 태어나셨을 것이라 짐작하여, 예루살렘에 와서 그분을 수소문합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2,2)


그러나 동방 박사들의 방문에 헤로데 임금과 온 예루살렘은 깜짝 놀랍니다.(2,3참조) 멀고도 험한 길을 마다 않고 익숙한 고향을 떠나 선물까지 준비하여 경배하러 온 이방인 동방 박사들과 달리, 그토록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으면서 정작 메시아의 탄생에 금시초문인 유다인들의 반응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탄생 소식을 반가워하기는커녕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헤로데는 로마의 권력에 의지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꼭두각시 임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아들마저 의심하고 죽일 정도로 늘 불안에 휩싸여 있었는데, 난데없이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 대뜸 새로 나신 유다인들의 임금을 경배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당황스럽고 두려웠을까요? 급기야 헤로데는 무고한 어린이들을 희생시키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고 맙니다. 폭군 헤로데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온 예루살렘>이 경악할 것까지야 없었을 텐데요. 하지만 그 당시 예루살렘 또한 헤로데와 한통속으로, 헤로데 편에서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특권층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렸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출현으로 한바탕 유다 전체가 들썩였을 텐데, 먼 길을 찾아온 이방 손님들만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는 걸 보면, <온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탄생을 환영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부터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집니다. 그분의 탄생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환영하고 예배하는 사람들. 예수님은 공생활 내내 이런 배척과 환대의 변덕스런 무리 속에서 지내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는 임금의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서도 알아보고 찾아온 별이 지척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별을 가렸을까요? 그 시절 예루살렘에서도 인간들의 부조리와 탐욕이 하늘의 별을 가렸나 봅니다. 별은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입니다. 초라한 현실들과 고통스런 약자의 모습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의 별은 빛을 발할 것입니다. 헤로데와 예루살렘의 율법학자들과 같이, 오늘의 통치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엉뚱하고 때때로 간교한 생각도, 말씀을 찾아가는 우리의 발길을 막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갇혀서 사는 이기심의 따뜻한 온상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버리고 떠나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과거를 가지고 우리와 시비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길을 떠나면, 별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선 예루살렘을 마다하시고, 별들이 총총한 시골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봅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2,6) 베들레헴은 내세울 것 없는 곳이지만, 정의로운 임금 다윗이 태어난 고을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아니라 초라하고 이름 없는 마을 베들레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진정한 임금의 오심을 알리는 별을 보고 알아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향에서부터 쫓아온 별이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을 때, 그들은 더없이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첫 손님들은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경배합니다.(2,11참조) 마태오 복음사가는 <땅에 엎드린다.>는 표현을 오로지 예수께만 사용합니다. 최고의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로지 예수님뿐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들은 또한 고향에서 들고 온 진귀한 보물을 예물로 내놓습니다. 어쩌면 박사들의 세 가지 예물은 의미롭게도 예수님의 생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것입니다. 황금은 왕을, 즉 예수님을 하늘과 땅의 왕으로 모신다는 뜻이고, 유향은 기도와 흠숭의 상징으로 향기로움을 한 분이신 하느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몰약은 죽음과 장례를 상징하는 것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땅에 묻히심을 뜻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동방의 박사들처럼 탄생하신 예수님께 드릴 우리의 가장 귀한 선물은 과연 무엇일가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주어진 우리의 삶을 충실히 살고 그로인한 삶의 모든 아픔과 상처의 흔적만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봅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고 힘들게 할지라도 우리 삶의 고통을 바친다면 그것이 우리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의 선물을 사양하지 않으시고, 정중한 인사도 묵묵히 받아들이신 것처럼 저희들의 선물과 경배도 기꺼이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하늘의 징조를 알아본 박사들, 줄곧 한 별을 쫓아 세상을 떠돌다가, 진정한 임금을 만나 경배하고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첫 손님들한테서 두고두고 배우면서 금년을 살아야겠습니다. 말씀의 별을 따라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고 버릴 마음은 있는지, 그로인해 겪어야 할 어려움을 받아드릴 용기는 있는지, 우리가 도착해야할 베틀레험이 어디인지, 그리고 기꺼이 바칠 최고의 예물은 무엇인지 등. 주님을 비추었던 그 빛, 온 세상 사람들이 알아차렸던 그 빛을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 각자에게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가 일어서도록 재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그분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황금도 유향도 몰약도 없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예물로 다시 바쳐야 합니다. 공현은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다시 온 인류의 빛이 되게 재촉하시는 그분의 초대입니다.<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2,2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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