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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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생각과 마음의 태도를 살펴보셨습니다. 오늘도 동일한 시선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닥칠 상황을 이미 예견하신 듯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군중들을 돌려보낸 다음 기도하시려 산에 홀로 가셨습니다.(Mr6,45~52참조) 발단은 제자들의 배가 저녁이 되어 호수 한가운데 있었고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체 없이 제자들을 도와주려고 제자들에게 가시기보다 당신 하실 일, 곧 기도를 다 마치신 다음, 새벽녘에야 제자들 쪽으로 가셨습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도와주시려 제자들의 배가 있는 쪽으로 가신 게 아니라 그냥 <그들 곁을 지나가려 하셨다.>(6,48)고 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왜 모든 상황을 예견하셨고, 그래서 제자들이 바람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셨음에도 도와주지 않으셨으며 그리고 제자들의 배를 그냥 지나가려고 하신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저는 예수님과 함께할 때 제자들과 함께 하지 않았을 때의 제자들의 모습이 확연히 차이가 드러난다는 사실에 시선이 먼저 갑니다. 이런 점은 예수님께서도 이미 간파하셨기에 제자들 스스로 문제를 풀어 나가도록 도전하셨던 것이라고 봅니다. 즉, 훗날 당신이 떠난 다음에 홀로 남은 제자들에게 삶에서 예고 없이 닥칠 환난과 어려움의 현실 앞에서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처할 능력을 키우기 위한 의도도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이는 단지 제자들만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두시고 지나치시려고 했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또 한편 제자들을 먼저 보낸 까닭은 아마도 몸도 마음도 지친 제자들에게 쉼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셨기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군중만이 아니라 자신을 도와주느라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으며 그런 제자들을 알고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라.>(6,30)고 권유하셨기에 진심으로 제자들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당신 역시도 쉬시지도 못했기에 지쳤을 텐데도 쉬지 않고 당신은 홀로 산으로 나아가시서 기도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기도는 몸과 마음이 사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쉼이며 안식인 것입니다. 그토록 지치셨음에도 홀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스승이 함께 계시지만 홀로 남은 제자들은 그 때야, 자신들 또한 기도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더욱 분주하고 힘들게 일하신 다음에도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 또한 기억해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사랑의 쉼이며 안식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이런 평온한 선율에서 갑작스레 변조가 일어나면서 박자가 빨라지고 힘이 뻗어 나옵니다. 그 변조는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으며,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기 때문입니다.>(6,49~50) 물론 지금껏 제자들이 살아오면서 사람이 물 위를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유령인 줄로 착각하여 비명을 지르고 겁에 질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겁에 질린 그들의 모습이 조금 실망스럽고 한심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나 압박이 닥치면 사람은 잠시 동안 스스로 살기 위해 어떤 상태로 도피하게 되며 뒤늦게 깨어 일어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스승이신 주님께서 함께 기도하자고 당부를 3차례나 했음에도 잠들었던 것과 유사한 심리상태라고 봅니다. 극도로 겁에 질린 상태에서 사리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마치 헛것을 본 듯 놀래는 그들의 모습, 어쩌면 이 경험을 통해서 제자들은 새삼 자신들의 나약함과 믿음의 부족을 뼈저리게 실감하였으리라 보며, 이 일로 그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새롭게 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도 요한은 어쩌면 이런 체험들을 통해서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Jn4,18)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인지 알기 이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두려워하고 겁에 질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는 징벌과 관련되었다기보다 사랑과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자각할 때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이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어느 곳에서든 어느 때라도 늘 사랑으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느끼게 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그 곳은 어둠이며 절망이며 두려움이 있겠지만,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상황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6,50)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함께 계신 한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 풍파가 우리에게 밀어 닥치는 상황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명심해서 간직해야 하는 것은 바로 맞바람으로 배가 심하게 흔들려 힘들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탄 배에 오르자마자 바람이 멎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마음의 불안의 바람, 우리의 마음의 두려움 바람, 실망의 바람, 불신의 바람처럼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바람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 영혼이나 가정에 머무시는 순간 잠잠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일을, 이 경험을 제자들의 마음에, 기억에 깊이 새기고 싶었던 것이 예수님의 의도이자 사랑의 가르침이었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빵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한 의도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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