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20.01.15 10:17

연중 제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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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입이 짧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묵은 김치보다 겉절이를 더 좋아합니다. 요즘은 많은 과일도 그렇지만 채소도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시절(時節)을 앞서갑니다. 그래서 삭아가는 김장김치보다 저로썬 <봄동> 겉절이를 더 좋아하고, 봄동 겉절이가 나오는 날은 제 눈과 혀 그리고 마음이 호사를 누립니다. 그런데 이 봄동에 관해서 어느 스님이 참 맛깔스럽게 표현했더군요. 잘 아시는 것처럼 봄동은 늦게 파종한 배추로, 보통 배추와 달리 속을 채우지 못하고 겉모양도 맛도 배추와 다르기에, 봄동은 배추이면서도 배추가 아닌 불이不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이름부터 역설과 반전이 담겨져 있다고 느껴지지 않나요. <봄동>에서 봄은 순수한 우리말이고, 冬은 한자어로 겨울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다름을 아우르고 안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거두어 주는 가운데 함께 <오고 감>, <버림과 받아들임>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이치가 봄동 겉절이 안에 담겨져 있다고 느껴집니다. 아마도 오늘 복음(Mr1,29~39)도 이런 시선에서 보면, 예수님의 <비움과 받아들임>, <숨음과 드러남, 은둔과 노출>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는 예수님의 가파르나움에서 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활동을 통해 기도에로 은둔하고 숨으시며, 기도를 통해 활동에로 노출하고 드러내면서 끊임없이 다름이 조화로운 삶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예수님은 본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은 듯 그 흐름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담백하지만 처절하고 진솔하게 드러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먼저 주님은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새로운 가르침>의 진수를 보여주시고 난 뒤 베드로와 안드레아 집으로 돌아오시어 쉬시고자 하셨습니다. 허나 열병을 앓고 있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해주셨으며 그녀의 도움을 받아들여 잡수시고, 저녁에는 또 다시 몰려 온 사람들의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들을 치유해 주고 마귀 들려 힘겨워하는 이들 역시 마귀를 쫓아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늦은 밤까지 치유활동을 하셨으며 잠시 눈을 붙이시고는 아직도 캄캄한 새벽인데도 일어나시어 홀로 외딴 곳으로 물러나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고 복음은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루 종일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머물면서 그들이 실제적으로 겪고 있는 신체적인 여러 가지 질병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사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 지치게 하는지 아십니까? 아무튼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바로 당신 복음 선포의 구체적인 사명으로 선포하셨던,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는 질병과 악령과 죄에서 해방과 속량을 위한 실제적인 활동인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서 치유 받고 마귀 들림에서 벗어나자 그 곳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서로들 축하하고 기쁨으로 들썩거렸겠습니까? 정말이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크신 자비를 베푸시고 치유를 통해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아마도 감사와 환희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으리라 봅니다. 그렇게 온종일 일하시느라 심신이 지치셨을 주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피곤에 지친 제자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홀로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1,35참조) 사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도직 활동에 전념하는 성직자-수도자들이 흔히 쉽게 놓쳐버릴 수 있는 면이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쇄신의 문제>라는 교회문서에서, <사도적 활동과 복지 활동이 수도생활의 본질에 속하는 사도적 활동 수도회에 있어서도, 이 활동은 수도생활의 첫째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다.>고 천명하고 있을 만큼, 쉽게 활동이란 이름하에 <기도>을 소홀히 하고, 기도를 방치하는 불균형을 낳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기에, 예수님의 오늘 복음의 모습은 교회 안에 복음 선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흔히 수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수도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존재인가가 더 중요하다. Doing 이전에 Being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봄동>처럼 <활동과 기도>는 함께 어우러짐 곧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보여 줄 수 있겠으며, 선포자의 말에 무슨 권위가 있겠으며 새로운 가르침이겠습니까? 사실 예수님의 활동과 기도의 긴장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복음의 초입부분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일상이었습니다.

 

어쩌면 늦은 밤 시간까지 치유해 주셨고 이 입소문이 퍼져나가자 아침부터 어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몰려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몰려든 사람들은 거두절미하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고 아우성을 쳤나 봅니다. 그러기에 그 때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모두 다 여기 저기 들쑤시면서 찾아다녔나 보지요. 그래서 그분을 보자마자 대뜸, 제자들은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1,37)라고 말씀드리는데, 그 어감이 무척 들뜬 목소리가 아닐까 상상해 집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신 예수님의 태도와 응답을 좀 더 세밀하게 보고 느껴야 하리라 봅니다. 아마도 혹시 저와 같은 속물들은 얼씨구나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대박, 대박사건!> 하면서 맞장구를 쳤을지 모릅니다. 우쭐거린 마음에 얼씨구나 하면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마을로 한걸음에 달려갔을 것입니다. 허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태도와 함께 단호하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1,38) 왜 이렇게 급하게 단호하게 그 마을로 들어가시지 않고 홀연히 떠나셨을까요? 물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해야 하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이미 그 마을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알고 계셨기에, 인간적인 인기나 영광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셨다고 봅니다. 이미 나자렛 고향 사람들과 비슷한 그들의 의향을 꿰뚫으셨던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과 하느님 나라의 통치를 알려주고, 보여 주고 싶었지만 그들은 단지 외적인 표징만을 보았지, 보여 진 것 너머에 있는 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거룩한 것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미련 없이 기꺼이 모든 것을 접고 마무리해서 홀연히 다른 마을로 길을 잡으시고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일상은 <드러남과 감춤>, <은둔과 노출>, <기도와 활동>을 아우르시는 활동을 하신 분이시고, 이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파견에 충실하신 분이셨기에 존재에서부터 그토록 아름답고 열정적인 활동을 하실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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