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10.24 08:43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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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돌아가신 박 도세신부님은 전례 초를 참 소중히 다룰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전례를 하다보면 촛불을 켤 때가 있는가 하면, 촛불을 끌 때도 있습니다. 나룻배에서 촛불을 켜고 책을 읽던 시인 타고르는 촛불과 달빛의 신비한 대조를 경험 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는 <촛불을 끄자 신성한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둘러쌌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달빛이 춤추며 흘러 들어와 나룻배 안을 가득 채웠다.

촛불 때문에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고 노래합니다. 시인 신석정은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은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읊었다고 합니다. 이글거리는 촛불은 명상의 마음결을 흩뜨리기 일쑤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렇듯이 살다보면 어느 때, 문득 내 안에 양면적인 불이 타고 있고, 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삶의 오래 시간 내 안에서 타고 있었지만 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내 마음 안에서 마음의 평정을 흩뜨리는 감정의 불, 욕정의 불이 훨훨 맹렬하게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시간이 길어지고 깊어지면서 차마 타오르지 못한 채 개화(改火)되기만을 기다려온 영혼의 불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타고르의 비유처럼 촛불이 잦아들고 사그라져 마침내 꺼질 때 비로소 달빛의 신성한 아름다움이 자신의 나룻배 안으로, 영혼 안에 가득 채워지듯이, 예수님께서 주실 그 불이 내 영혼에서 활활 타오르기 위해선, 욕정과 격정의 촛불이 사그라져야 함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더 온전히 머물게 되면 평화이신 주님 성령의 불이 저의 격정의 불을 사그라지게 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주님께 <그 불이 타오르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Lk12,49~53)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는 말씀에서 언급한 불은 성령의 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스스로 그 불을 타오르게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불을 우리가 건드리기만 해도  타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마중물의 개념처럼, 예수님은 이 불을 타오르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으며, 예수님의 이 불을 건드리면 내 안의 분열과 불화의 불은 이내 화력을 잃고 잿더미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 우리 내면 안에서 격정과 욕정의 불을 끄고자 하는 의지가, 결단이 우선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참 평화를 주시려고 오셨지만, 참 평화를 살기 위해 먼저 평화를 저해하는 관계의 재정립과 분리의 아픔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가족들 간에 갈라져 맞설 것이며, 마침내 갈라지게 될 것이다.>(12,51.53) 이처럼 거짓 평화가 아닌 참 평화를 위해서 거짓된 평화를 태워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은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듯이 거짓된 평화를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를 위해 불을 질러야 합니다. 불은 불로써 꺼야 하며, 불은 불로써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태워버리면 남은 것은 재 곧 죽음입니다. 이는 곧 새로운 것, 참 평화를 위해 생명을 잉태하는 죽음입니다. 처음에는 죽음만이 보일 뿐 새로운 생명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열만 보일뿐, 새로운 일치와 평화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평화나 일치 보다 당장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뜻 불을 지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나셔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불을 지펴서 진정한 일치와 화목, 참된 평화와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태워버리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불로 평화를 저해하고 가로막는 지금까지의 모든 거짓과 어둠을 살라버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십니다.

 

사실 고통과 불행을 겪으면서 힘들어 할 때 새 생명의 불은 타오르는 법입니다. 우리 내면의 격정과 욕정의 불길은 고통스럽게 타오르지만 새로운 성령의 불은 온전한 동력이 되고 활력으로 타오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지르러 오신 불은 <하느님의 나라>라는 불이요, 그 하느님의 나라라는 불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12,50)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불을 타오르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즉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의 평화와 화해와 친교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불은 이 세상 마칠 때까지 계속 번져 나가야한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필3,8~9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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