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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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가정축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가정>하면, 막연히 거룩하고 평화롭고 행복이 넘치는 가정,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충만한 가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성가정을 본 받는다.>라고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의 한 부분은 우리가 가지지 못했지만 <성가정>이 누렸을 법한 행복이, 우리 가정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 중의 <거룩하다.>란 의미의 성(聖)이란 말은 히브리어 <자르다.>, <분리하다.>란 말에서 파생된 말로서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어떤 인물이나 장소, 그리고 물건 등과 함께 쓰이게 되면서 단순한 구별보다는 인물이나 장소, 그리고 물건 그 자체를 <거룩한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성, 거룩함>이란 말을 그것과 함께 사용되는 사람이나 사물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다.>란 제한된 의미 보다는 다른 의미 혹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제 평소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聖>이란 개념을 <하느님과 관계된> 혹은 <하느님과 연결된>이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치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 참 많은 순교성지가 있습니다. 저도 이스라엘은 물론 여러 나라의 여러 성지를 순례했고, 베트남에 살 땐 저희 예수고난회의 주보이신 라방 성지(聖地)도 순례하고 왔었지요. 여기서 성지란 말도 땅 그 자체가 거룩하고 다른 땅에 없는 신성한 기운이 있는 땅이란 의미보다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었던 땅이란 의미가 더 타당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데 이 성가정이란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가정 하면 그 가정 자체의 거룩함을 떠오르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이 가정은 다른 가정에는 없는 신성함과 거룩함, 평화로움과 행복, 그리고 세상의 모든 선들이 가득한 가정이요, 그런 의미에서 성가정이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성가정이란 말은 이러한 의미에서 사용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 일면을 보지만 외적으로 드러난 성가정은 세상이 불행의 요소로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가진,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불행한 가정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가난, 갈등, 불화, 불효, 고통,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 등 등 외적인 조건만으로 판단한다면 행복과는 거리가 먼 가정이요, 우리가 환상 속에 그리는 핑크빛 가정이 아니라 어둠의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런 모든 불행의 요소를 가진 이 가정을 교회는 여전히 성가정이라 부르고 있고, 우리 모든 가정이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이 가정이 가졌던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눈>, <불행의 요소마저도 하느님과 연결시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순명했다>는 사실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가정이었습니다. 요셉의 직업은 장인, 목수이었는데, 그 시대 이스라엘의 목수는 대개 가난한 일용직 막노동자였기에 한 끼 배부르게 먹는 것도 힘겨웠다고 합니다. 오늘날 인건비가 비싼 한국 땅에서도 일일 노동자들의 삶이 고단하다면, 2000년 전 작은 도시 나자렛에서 막노동으로 삶을 살아갔을 성가정의 경제적 상태는 쉽게 상상 하고도 남을 만큼 가난했습니다. 성가정은 물론 과거 우리 부모세대와 비하면, 현재의 우리 가정들은 경제적으로 훨씬 부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네 가정이 예전에 비하면 행복 하느냐하면 꼭 그렇지만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물질이 부족해 성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 때문에 성가정을 꾸리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지금 부자입니다.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물질이라면 성가정은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가정을 화목하게 평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과 마리아는 가난하게 사셨던 것입니다. 늘 하느님의 시선에서 하느님과 관련해서 바라 볼 수 있었기에, 가난한 현실을 거부하고 부정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자신의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가정은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가정을 성가정의 모델로 여깁니다. 그 가정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눈>, <불행의 요소마저도 하느님과 연결시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순명했다는 사실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우리의 삶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가족과 우리 가정의 일을 하느님과 연결하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불평하는 아내와 사사건건 비판하는 남편, 부모의 속을 끓이는 자식과 자식을 이해 못하는 부모, 그리고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요소와 상황들. 그 모든 것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데리고 함께> 하느님께로 나가고 하느님과 연결해서 가족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삶. 바로 이 삶이 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묵상해야할 성가정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성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자렛 성가정 역시 자식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복음에도 그 한 면을 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 과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부모는 아들 예수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 때문에 부모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 어렵게 성전에서 그 아들을 되찾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부모의 애타는 마음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는 성질 급한 한국 아버지였다면 아들에게 한 대 줘 박았을 겁니다. 이에 덧붙여 예수님의 공생활 시절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 곧 술주정뱅이요, 악령 들린 사람, 죄인들하고 어울리는 미친놈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걱정되어 찾아간 어머니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라는 너무나 매몰차고 어미의 가슴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 가정은 고통이 떠나지 않는 가정이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많은 고통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은 서양인들에게는 배우자의 죽음이고, 동양인에게 있어서는 자식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성가정은 이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겪은 가정이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외아들마저도 자신의 눈앞에서 처절히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고통을 감수해야 만 했던 바로 이 가정의 마리아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든 불행의 요소를 가지고 있던 가정이 바로 성가정이었던 것입니다.

 

가족사이라고 해서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체험합니다. 특별히 가족 가운데서도 언제나 다른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에게 한결같이 사랑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자렛 성가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요셉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2,13.14.20.21)라는 말이 무려 네 번이나 반복 됩니다. 의로운 요셉이 평생 되뇌며 살았던 말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함께 동행하고, 동행하면서 닥아오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모든 어려움에서 보호해 주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야 할 의로움 곧 하느님 안에서 부족하고 상처받고 힘든 가족들을 우선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태도이며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성가정은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가정을 성가정의 모델로 여깁니다. 그 가정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눈>, <불행의 요소마저도 하느님과 연결시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순명했다는 사실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우리의 삶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가족과 우리 가정의 일을 하느님과 연결하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불평하는 아내와 사사건건 비판하는 남편, 부모의 속을 끓이는 자식과 자식을 이해 못하는 부모, 그리고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요소와 상황들. 그 모든 것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데리고 함께> 하느님께로 나가고 하느님과 연결해서 가족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삶. 바로 이 삶이 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묵상해야할 성가정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성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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