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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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있어서는 가정(=만약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일 조선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수도 서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복음(Mt4,12~17,23~25)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 공생활(=사도직)을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4,12) 시작하셨는데, 그 출발지 또한 당대의 종교와 정치 문화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레아의 작은 도시 카파르나움에서 시작하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익히 아시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면서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예수님 위에 머무르시는 것>(Jn1,32)을 보시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보고 증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Jn1,27)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에 대한 공경에서 겸손하시게 당신 제자들이 기꺼이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길을 빗겨드리고(Jn1,37참조) 물러나신 분이셨습니다. 어쩌면 그러기에 예수님 또한 세례자 요한을 인정해 주시고, 그가 활동하는 기간 동안 침묵하고 계시다가 그가 활동하던 곳이 아닌 새로운 지역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것은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우이며 배려라고 느낍니다. 사실 인생은 끊임없는 <드러냄과 감춤>,<나옴과 물러남>의 연속인데 이 두 분 안에서 그 시간과 공간의 활용에서 이런 인생의 숨은 뜻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서로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풍겨 나기에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당신 활동 무대를 갈릴래아로 가신 까닭이야 여러 요인들이 내포되어 있겠지만 이사야의 예언서(8,23~9,1)에 언급된 대로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4,15~16)는 예언처럼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로부터 빛을 비추어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당신 공생활의 활동거점으로 결정한 것은 인간적인 요인들도 작용했겠지만 주된 요인은 바로 하느님 뜻(=예언의 성취와 완성)과 계획이었으며, 또한 그 지역이 갖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와 현실적인 상황이 작용하였으리라 봅니다. 준비된 하느님 나라가 이제 그 때를 만나고 예정된 그 곳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변방이며 주변지인 갈릴래아 지방에서부터 복음 전파를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갈릴래아는 당대 이스라엘의 종교-정치-사회-경제-문화의 중심부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변두리 지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소외되고 무시되고 차별 받은 곳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나타나엘이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Jn1,46)하며 갈릴래아 지방을 무시하는 표현을 합니다. 이는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식 속에 내재된 지역차별주의의 증좌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네 신앙생활에도 교회 차원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심각히 반성해 봐야 할 일입니다. 주님처럼 교회 역시도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척당하는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한 곳, 낮은 곳,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고 찾아 나서려는 마음을 지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수도회 창립자이신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선교지역을 선정할 때, 가장 우선적이 고려 사항은 먼저 물을 식용으로 마실 수 있는 곳과 소외되고 가난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었습니다. 저희 수도회가 예전 제주 교구 본당을 맡을 때도 이런 배경에서 제주에서 가장 복음화가 저조하고 가난한 지역을 강력히 원했기에, 당시 남원보다 표선을 간청하고 선택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4,16)라고, 또 <백성들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4,23)을 먼저 고쳐주셨다고 합니다. 루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첫 설교를 당신 고향마을 나자렛 회당에서 하셨는데, 그 설교의 핵심 요지와 당신 사도직의 대상과 방향을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려>(4,18)하려는 선포와 결코 큰 차이가 없다고 보여 집니다. 주된 핵심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그리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4,17)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가장 가난하고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죽음의 문화가 팽배한 지역이자 희망이 없는 곳)가 짙게 배여 있는 곳과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빛나고 빛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작 빛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둠과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내몰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또한 올 한해 예수님처럼 열정을 가지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데, 우리가 나가야 하는 곳은 우리 모두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난하고 희망의 빛이 없이 절망과 비참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과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무게로 짓눌려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 선포활동은 살고 있는 지역을 <두루 다니며>, 상황과 여건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장소를 불문하고 가르치며 특히 육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영적이든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닥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고 먼저 그들에게 찾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분명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1요3,6) 하지만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이 땅을 살고 있기에 비록 그들이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희망과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며 그들과 더불어 삶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절망을 함께 나누려고 다가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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