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미사후 잠깐 경내를 거닐며 햇볕에 반짝이는 살짝 물든 이파리들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큰 누님으로부터 노래화일을 하나 전송받았다.
https://youtu.be/_FMpKaiCfMM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말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좁은 마음을 벗어나면 모든 날이 다 좋은 날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매일의 독특한 매력이 없어지고 평준화 되는것도 아니다. 무문대사의 시가 일일시호일의 깊숙한 의미를 전해준다.
Ten thousand flowers in spring,
the moon in autumn,
a cool breeze in summer,
snow in winter.
If your mind isn’t clouded
by unnecessary things,
this is the best season of your life.
당당하게 산다함은 감춰짐이나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사는것일텐데! 지록위마(指鹿爲馬)나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시대와 관계없이 통하는 것을 보면, 역시 사람도 그들이 만드는 사회도 쉬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 다행히 지혜가 생겼는지 얼토당토않은 바람을 갖지는 않는다. 젊어서는 이 복음이 권력자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토로하는 당당함을 연상케 했다면, 지금은 같이 지내는 사람서리에서 가식없이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살기를 바랄뿐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샤르댕 신부가 미사를 드릴 때 가졌던 마음가짐과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배우고 싶다.
떼야르 드 샤르댕의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주님, 이번에는 앤(Aisne) 숲 속이 아니라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 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 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聖盤)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 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聖爵)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영(靈)’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주님, 새날의 첫 새벽에 당신께서 만드신 창조계 전체가, 당신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다 올려 봉헌하는 이 거대한 제병(祭餠)을 받으소서. 저희의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낌으로 감지합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저희는 모두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저희를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
제가 비록 당신의 성인들처럼 영적 열망을 지니지도 그분들 같이 드높은 순결에 이르지도 못했지만, 당신께서는 저에게 칙칙한 물질 덩어리 속에서 꿈틀대는 모든 것들을 향해 억누를 길 없는 애정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천국의 자녀이기보다는, 비교 할 수 없이 더, 땅의 아들임을 의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아침 제 어머니의 희망과 비참을 가슴에 품고 마음속으로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렵니다. 거기서 당신께서 제게 주셨다고 확신하는 사제품의 힘을 빌어 저는 떠오르는 태양 아래 인간 육체의 세계에서 이제 곧 태어날 것과 죽어 갈 것을 위해 ‘불’을 끌어내리겠습니다.
늙어감을 슬퍼하는 이들을 위한 샤르뎅 신부의 기도문
몸에 하나둘 나이 먹은 흔적이 생길 때 그리고 이 흔적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 나를 조금씩 움츠러들게 하고 쇠약하게 하는 질병이 몸 안팎에서 생겨날 때,
나도 병들고 늙어 간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으며 두려움 속에 빠져들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만들어왔던, 알지 못하는 위대한 힘들의 손길 안에서 자신을 잃어 가고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마침내 느낄 때
이 모든 암울한 순간에, 오 하느님, 저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제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와 저를 하느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조금씩 분해시키는 과정임을! 그 과정에서 하느님께서도 저만큼이나 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