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일이다.
마태오 복음 11: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불리운 사람들만이 진정 광야로 가고 거기 머므른다. “Eremus amat nudus!” 광야는 사람을 발가벗긴다. 광야로 불리운 사람의 원조로는 엘리야 이전에 모세를 들수있겠다. 광야로 내몰린 그는 로얄 훼밀리의 일원이라는 페르소나가 벗겨진다. 그리고는 히브리 노예의 아들이라는 신원도 벗겨지고 원초적인 피조물이 된다. 대자연 앞에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피조물이라는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고 거기에 충실하게 하느님의 도구가 된다.
광야의 체험이 없는 무리들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신념을 바꾸는 종교인이나, 권력가, 재력가를 기리며 따른다. 이 시대에 진정 예언자가 드문 이유는 광야의 체험이 없기 때문일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자판을 다룰수 있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