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 한국 진출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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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수 고난회 : 한국 순교자들의 관구(MACOR)

예수 고난회 한국 진출과 성장 

한국 진출은 1964년 광주대교구장 현 헤럴드(H. Henry) 대주교가 골롬반 외방선교회 사제들의 연례 피정을 지도하러 온 윌리암 웨스토븐(W. Westoven,C.P.) 신부를 통해 성 십자가 관구장 제임스 화이트(James Patrick White, C.P.) 신부에게 예수고난회의 한국 진출을 요청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같은 해 1964년 9월 15일 미국 시카고 관구(성 십자가 관구)에서 2명의 선교사, 마 라이문도 ((Raymond Mcdonough C.P)신부와 오멜리 신부가 광주에 도착하게 되었다. 1969년 광주 화정동에 '피정센타'가 건립되기 전까지 벌교, 보성 등의 본당과 대건신학대학에서 활동하였으며, '피정센타' 건립 후 광주 교구 신부님들의 도움을 받아 피정 사도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71년 성 십자가 관구 한국 순교자들의 '지부'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지부장은 마 라이문도(Raymond Mcdonough C.P)였다. 1974년 2월 13일 첫 방인 수도자들의 첫서원식이 있었다. (예수고난회 첫 방인 수도자 : 김승종 바오로 C.P., 정이진 비오, C.P.) 1977년 두 번째 피정집인 서울 명상의 집이 개원하면서 예수고난회 피정 사도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1985년 광주 화정동의 피정센타를 현재의 일곡동에 '명상의 집'이라 개명하여 새롭게 시작하였고, 1987년 서울 돈암동에 지부청 겸 신학원을 개원하였다. 1988년 "한국 순교자들의 준관구"로 승격하였고, 초대 준관구장은 박도세(Justin Bartozek, C.P) 신부였다. 1991년 청주 청원군 척산리에 '수련원'이 독립하여 문을 열었으며, 1997년 제주교구 표선 본당에 진출하였으며, 1999년 춘천교구 양양에 오상영성원 겸 수련원을 개원하였다. 2000년에는 중국 선교를 위해 세명의 회원을 파견하였는데, 이는 100여년전 중국 공산화 이전 활동하던 예수고난회원들의 복음적 열망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2002년 10월 6일에는 광주에서 전세계 총 시노드(관구장회의)를 주최하였고, 이 시노드를 통하여 준관구에서 관구로 승격하였다. 관구의 제 1 대 관구장으로는 김준수 아오스딩 C.P., 2006년 제 2 대 관구장으로 박태원 가브리엘 C.P., 2010년 제 3 대 관구장으로 신동호 베드로 C.P., 2014년 제 4 대 관구장으로 강수근 바오로 마리아 C.P.가 선출되어 형제들의 종으로 봉사하고 있다.  

2014년 현재, 한국에는 4개의 수도공동체(서울 우이동과 돈암동, 강원도 양양, 광주 일곡동, 척산리 공동체는 현재 폐쇄중이고 2007년 제주 표선리 본당에서 철수함.), 3개의 피정집(서울 명상의 집, 광주 명상의 집, 양양 오상영성원), 한 개의 신학원(서울 돈암동)과 한 개의 선교 공동체(중국)가 있으며 2명의 선교사(사제1명, 수사 1명)가 파견되어 있다. 본 수도회는 28명의 종신서원 수도자(사제 20명, 수사 8명), 1명의 유기서원자, 2명의 지원자(내부지원자 1명 - 수도원 거주, 외부지원자 1명 - 신학교 거주) 가 생활하고 있다. 

또한 1986년에는 창립자께서 말년에 창설하셨던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진출하여 청주 미평에 관상수녀원을 설립하였으며, 이후 공동체 인원의 증가로 말미암아 2004년 새로운 수녀원을 짓기 위한 공사를 시작하여 2006년 현재의 자리에 새로운 수녀원을 완공하였다. 1996년에는 예수 고난 활동수녀회가 진출하여 춘천 퇴계동에서 본당사목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