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수도원에 와서 문지기 수사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교우가 있었다. 한껏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수사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겠지요?” 하는 것이었다. 이 교우에게 약간 싫증이 난 문지기 수사님은 어느 날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한다. “교우님이 생각하는 것 보다 꼭 한 사람 적을 겁니다!” ^^
그리스 공항에서 표지판에 Έξοδος(Éxodos, 엑서더스) 라고 그리스 어로 쓰인 것 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성서에서만 보던 그리스 어 단어를 현실 생활 속에서 본 충격이었다. 그리스 인들에겐 그저 단순히 출구를 뜻하는 단어겠지만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교인 들에겐 존재의 근간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존재하게 된 뿌리이며, 변치 않을 천성이고, 미래에도 존재를 보장하는 생활양식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전체가 바로 이 Έξοδος의 체험을 근간(根幹)으로 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엑서더스의 체험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해석하는 해석틀이자 마스터키 이었다. 유대인들은 역사를 이 마스터키로 해석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하였다 많은 예언자들 중에서도 엑서더스를 가능하게 한 제물, 어린양의 모습과 그의 대속적인 죽음을 깊이 파고들어 더욱 심오하고 정교하게 형상화한 예언자는 단연 제 2 이사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야훼의 넷째 종의 노래는 엑서더스를 가능하게 한 어린양의 모습과 그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제 2 이사야의 ‘야훼의 넷째 종의 노래“ 는 예수님이 자신의 신원을 이해하고 사명을 수행하는데 하느님의 손가락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또한 예수님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거듭나고 구원된 크리스천들도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진 사람들의 짐을 나누어짐으로 야훼의 넷째 종과 예수의 일을 이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