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필수품

by 후박나무 posted Oct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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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사가 축일이다. 몸이 불편하여 우이령은 포기하고 미사후 명상의 집 마당을 거닐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다. 수도원 고문서실을 꾸미기 위해 일꾼들이 벌써 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져온 소지품과 작은 배낭, 휴대폰등 자질구레한 것은 벤치위에 놓아두었다. 호기심 많은 까마귀 녀석들이 휴대폰을 그냥 놓아둘 리 없다. 게다가 자판엔 스프링까지 있어 부리로 찍으면 살짝 들어갔다 다시 나오니 좋은 장난감이겠다. 내가 일찍 발견하였으니 망정이지, 까마귀가 휴대폰 하나 작살내는데 5분도 안걸릴거다. 까마귀를 쫒고 휴대폰을 보니 액정에 문자가 찍혀 있었다. ffff ggg bbbb 까마귀가 성령을 받아 쓴 것 아닐까^^

 

몇 년 전 병세가 악화되어 급히 양양을 떠날 때 진정한 필수품은 몇 안 됨을 실감나게 배웠다. 입던 옷 그대로 그리고 옷가지 몇 개와 책 몇 권만 들고 황망히 몸만 서울로 오던 기억이 난다.

 

중국공산당이 티베트를 침략했을 때 라마승의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인도로 망명을 고려할 때는 가져가야할 책의 리스트만 해도 한 짐이었지만, 막상 공산군이 코앞에 닥치자 거의 몸만 빠져 나왔다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며 여유 있게 관조하며 떠날 것 같지는 않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하며 황망히 떠나게 될 텐데 그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마음에 남은 것 뿐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