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마태오 21, 33 - 41

by 이보나 posted Oct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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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청주 예수고난회 관상수녀원에서 연례 피정을 하고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심부름시킬 때마다 돈 백원을 주었습니다. 수고비 덕분에 아들은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돈을 밝히는 것을 알고서는 한동안 심부름을 시키고도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어머니에게 쪽지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동안에 심부름한 내력과 수고비를 합산한 것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서 잠시 후에 역시 쪽지 하나를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너를 내 뱃속에서 기르고 낳느라고 고생한 수고비, 너를 키우면서 젖먹이고, 기저귀 갈아 준 수고비, 네가 아팠을 때 밤잠 못 자고 마음 졸이고 간호해 준 수고비, 그것이 얼마나 될까?』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하였지요. 자기를 알면 자신이 앉을 자리와 설 자리,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자기를 모르면 자기의 자리가 어디인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비유 속의 소작인들은 아들이 상속자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들은 가당치도 않은 욕심에서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했으며, 포도원 주인의 아들마저 죽인 까닭도 다름 아닌 탐욕이라는 덫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듣고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우리 생각과는 달리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물에 눈이 멀면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부모나 형제 그리고 자식까지도 죽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렇게 재물에 눈이 멀면 부모와 형제 심지어 자식까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탐욕의 노예가 되면 이성이나 양심까지 마비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소작인들은 처음에는 주인을 대단히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일자리를 준 주인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세월이 흘러가면서 차츰 주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포도를 수확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가정을 꾸려가야 하고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더더욱 부모를 봉양하기도 해야 한다면, 그들은 주인에게 바쳐야 할 몫까지도 자신들이 다 써버렸거나, 쓰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어려운 처지와 상황이 되면 사람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겠지요.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시작합니다. 주인은 부자이며 자신들은 가난한 사람이고, 주인은 포도가 아니라도 먹고 살기 충분한 재력이 있지만, 자신들은 그렇지 못하고, 수확할 포도는 자신들의 수고와 정성의 산물이며, 주인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됩니다. 급기야 자신들의 수고와 정성의 대가를 주인에게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랬기에 주인의 종들이 도조를 달라고 왔을 때, 그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려주고, 죽이고, 심지어 돌로 쳐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종들에게 어쩔 수 없이 소작료로 바칠 것까지 다 써버렸노라고 사정하면서 주인에게 되돌아가서 자신들의 어렵고 불쌍한 처지를 아뢰달라고 부탁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번 달리 먹고, 달리 생각한 그들은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간악해져 갔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작은 죄가 걷잡을 수 없이 큰 죄가 되어버렸습니다. 

주인이 매번 종들을 다시 보냈다는 것은 용서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탐욕에 눈이 멀고 눈이 뒤집힌 그들에게는 주인의 깊은 배려와 신뢰까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돌같이 굳어진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은 소작인들이 자기의 아들은 알아봐 주겠거니 생각하고 아들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어찌 그렇게 어리석고 우둔할 수가 있으신가! 그렇게 우매한 주인이므로 종들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까지도 못된 소작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의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빠 하느님의 한없이 자비하심을 가르쳐주시고자 하시는 비유란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그처럼 어리석고 우둔한 까닭은 하느님 역시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눈이 멀어 계십니다. 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주인에게 그처럼 고마워하던 소작인들이 그렇게 악한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며, 믿을 수 없는 존재 또한 사람입니다. 역설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사람이 그처럼 배반하고 변절해도 끝까지 믿어주시고, 참아주시고, 견디어 내시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심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느님의 믿음과 사랑은 끝이 없으며 영원하시다는 점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비유의 결론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21,40)라는 질문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 결론을 내리도록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그래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까지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이처럼 끝까지 참고 견디시면서 우리를 믿어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집 짓는 이’(21,42참조)와 ‘소작인’은 누구일까요? 집 짓는 이들과 소작인들은 바로, 이 비유를 듣고 있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부하였으며, 급기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도록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람, 자기 욕심을 채우는 사람, 자기 아성을 쌓는 사람, 불의와 부정의 집을 짓는 사람,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사람들입니다. 이에 반해 ‘내버린 돌’은 바로 이들의 손에 붙들려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하느님은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십니다.”(21,43) 남의 불행이 우리의 행복이긴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공정한 정의 실현이고 하느님의 구원 경륜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줄 것”(필4,7)을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에 관해서 “자신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4,9)라고 권고합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신 예수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인 우리 또한 소작인들과 같은 인간적 본성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며”(4,8)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 불의하고 부정한 소작인들에게서 빼앗아 넘겨주신 하느님 나라의 포도밭에서 소출을 많이 내고, 소출을 많이 바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내 버린 돌, 그리고 내 버린 돌들로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아 지은 하느님의 집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하며 자랑스러울지 생각하니,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 놀랍기만 합니다.”(21,42) 이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4,6) 포도밭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으니 충실한 일꾼답게 포도를 많이 수확해서 소출을 제때 바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복음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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