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내 나라는 이 세상것이 아니다.

by 후박나무 posted Dec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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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열흘 만에 우이령을 오르다. 날이 추워 걸친 옷도 두꺼우니 오르막길이 더욱 힘들다. 주지하다시피 예수 고난회 한국 순교자들의 관구총회가 전남 광주 명상의 집에서 12월 3일에 시작하여 여러 안건을 처리하고 관구장과 2명의 참사를 선출하여 새로운 꾸리아를 구성하였다.  8일 노인조 수사님의 수도서원 50주년 축하미사후 총장 요아킴 신부님의 폐회선언으로 제 5차 관구총회를 공식적으로 마쳤다. 광주로 내려갈 때는 총회 말미의 관구장, 참사위원 선출에만 참여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것도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았다. 전임 장상으로서 지켜주어야 할 것도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보통 마음 한 구석을 늘 차지하던 복음사색도 제자리를 잃은 지 열흘이나 되었다.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있던 물음은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중 한 대목인 요한복음 18:36 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나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잘 아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읽는다면 아마 즉시 예수의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 즉 저세상의 일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의 태어남을 신화적인 언어로 기술하지 않고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인 ‘호구조사령’을 내리고 이로 말미암아 예수의 부모는 고향인 베들레헴이란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게 되고 거기서 예수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기술한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 속에 구체적인 인간으로 육화했던 사람이 온 생애를 바쳐 추구했던 바가 ‘저 세상’ 의 안녕일 수 있을까?

 

더욱이 히브리인들의 뿌리요 야훼에 대한 신앙의 출발점인 탈출기의 근간이 된 모세와 그 일당의 이야기를 음미 해봐도 그렇다. 그들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감행했던 탈출이 사후세계인 “저세상”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 치하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모세와 그 일당만이 탈출에 성공한 것도 아닐 것이다. 여러 집단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겠지만, 그 의미를 나름 제대로 해석하고 후대로 전승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출한 공은 아무래도 모세의 집단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그들의 탈출기가 그저 그런 무용담이거나, 자화자찬을 넘어서지 못해 후대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그들의 ‘탈출기’는 사막의 모래에 덮여 사라지거나, 찾는 사람도 없이 박물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모세의 집단이 꿈꾸며 찾던 나라는 또 다른 형태의 이집트는 아니었을 것이다. 로마제국을 대리하던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하던 예수의 말은 최소한 내 나라는 로마제국이 숭배하던 가치와 제국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는 폭력을 우상시하는 나라는 아니라는 맥락의 말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