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교도소

by 후박나무 posted Apr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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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치과에서 의치를 만드느라 한 시간 가까이 이를 갈아댄 여파인지 어쩐지 오늘은 새벽 1시에 깨어 꼬빡 밤을 새었다. 요한 23세 께서는 당신의 만년 저널에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태어나기에도 죽기에도 좋은 날이다” 하셨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란 말씀인데, 범인이 함부로 할 말은 아니라는 게 살아갈수록 사무친다. 오늘같이 잠 못 자고 비오는 날이 좋은날이 되자면 용을 써야한다^^. 아침마다 우이령을 오르는 일도 ‘십자가의 길’ 이 될 때가 많다. 새 울고 꽃피는 시절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꾸준함과 함께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게 간단하지 않다.

 

정확히 말해 불면증이 철학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무료함이 철학자를 만드는 것 같다. 1시에 깨어 잠이 안 오니 노느니 염불한다고 이번 성주간에 가졌던 관구 연례피정의 주제를 다시 생각해보다. 인드라 망이라는 그물의 코마다 달려있는 구슬 하나하나가 전체를 다 반영하듯이,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가진 피정강론이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플라톤의 동굴이야기를 반향 한다고 본다.

 

서양 철학사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철학 사가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모든 편의시설과 의료시설, 복지정책이 아주 잘되어 있는 교도소에 비유했다. 잘 먹고 잘 살아가지만 자유가 없고 거기서 생을 마쳐야 하는 사형수 내지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자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간혹 교도소를 탈출하여 바깥세상을 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개중에는 다시 돌아와 교도소에서 만족하여 사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탈주하도록 꾀는 이들도 동조하여 탈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대다수는 교도소 생활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절망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세상을 보고 와 그야말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대신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다.

 

복음의 효시인 마르코 복음은 16:8 의 빈 무덤 이야기로 끝난다. 교도소 바깥 세상이야기를 들었던 이들이 몸소 그것을 체험하고 전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생활을 영위하게 된 계기를 부활체험이라 하고 나름대로 기록한 것이 부활사화다. 마르코 복음도 다른 복음서들과 형평에 맞게 부활사화를 첨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