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by 언제나 posted Jan 01,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경자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로 올 한해가 참으로 우리 각 개인과 가정-공동체-우리나라-온 세상에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새해 아침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데 이는 곧 하느님의 축복에서 출발한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독서 민수기에서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사제직분을 맡고 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이 백성들에게 축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6,24~26)그렇습니다. 이는 단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축복의 기도만이 아닌 우리 모두 서로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인 것입니다. 다만 세상이 바라는 복과 우리의 축복이 다를 수는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어둠과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이 인생의 올바른 삶이며 가치인가를 찾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축복을 참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빌어주어야 하는 축복은 바로 참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예전 제주교구에서 사목할 때, 참으로 의미롭고 기억에 남는 일은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모든 사제단과 교구신자들이 함께 평화의 모후이신 천주의 성모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모님께 자신을 바치는 기도를 함께 바치며 새해를 시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새해 첫날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함께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빛을 따라 온 동방박사들처럼 그리고 마구간의 구유에 누워계신 갓난아기를 찾아 달려 온 목동들처럼 우리 모두 <세상의 빛이신 주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찾고, 그 평화를 간직하며 새해를 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우리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간직하면서, 이 평화가 세상으로 번져나가고 펴져 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평화가 세상에 충만할 때 비로소 세상에는 다름에 따른 차별(=性, 인종, 피부, 종교, 신분, 지역, 정당 등)로 인한 갈등과 불목, 억압과 폭력, 불의와 부정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함께 배려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세상을 이룰 수 있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는 바로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의 현존의 표징이며, 고난과 죽음을 통해 가져온 새 삶(=부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올 한 해 세상의 어린양이신 주님을 천사들과 함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Lk2,14)를 노래하며 기쁜 마음으로 경자년을 힘차게 출발합시다.


이 평화를 우리가 먼저 살고 세상에 빌어주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오늘 복음의 어머니 마리아의 신앙의 태도를 본받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뜻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아기에 관해 들었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자, 이를 들은 이들은 모두 놀라워하였다고 전해줍니다.(2,18참조) 왜 그들은 놀랬을까요? 아마도 무식하고 천한 그들의 입에서 천상의 신비가 선포되었기 때문일 것이며 동시에 그들을 예언의 도구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느꼈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 아기의 부모이신 요셉과 마리아는 더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루카 사가는 홀로 마리아만이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2,19)고 전하는 의도는 곧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이 한 해를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가 성모님의 이 마음의 태도를 바라보고 배우기를 원하시는지도 모릅니다. 마리아가 마음에 간직한 <이 모든 일>은 포대기에 싸인 채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장래에 대한 계시입니다. 마리아는 세례자 요한이 탄생했을 때 그 소문을 들은 이들이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1,66)라고 했듯이 하느님의 특별한 손길이 자신의 아들을 보살피고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간직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마리아가 이 모든 일을 한 번 간직한 것이 아니라 후에 표현된 <되새겼다.>라는 말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곧 되새겨서(=자꾸 골똘히 생각하다.) 간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마음속에 간직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기억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바로 성령의 기억과 어머니 마리아의 기억에 힘입어 성경을 기록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공생활 시작하실 때까지의 모든 일은 바로 어머니 마리아의 기억과 진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가장 고유하고 특성 중에 하나는 기억력입니다. 특히 어머니들의 자녀에 관한 기억은 너무도 생생합니다. 그것은 여성은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신이 겪은 일은 간직하기 때문이며 그 힘은 바로 자녀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속에 간직했다.>는 표현은 이후 예수님이 성전에서 다시 되찾으셨을 때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라고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2,51)는 대목에서 다시 되풀이 나옵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Jn16,33)고 세상의 평화이시며 우리의 평화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곧 평화는 어려움을 통해, 고난을 통해 가져다 준 선물이며, 이 평화를 살기를 바라는 사람 또한 그렇게 어려움 통해서만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특히 성모님의 한 생은 바로 한 인간으로써(=여성으로써)나 신앙인으로써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아드님 때문에 겪으셔야 했으며, 어쩌면 오늘 복음처럼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일>들 앞에서 평안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기다리시는 모습은 참 평화를 바라는 신앙인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참된 평화는 예수님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모든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고 하느님의 뜻을 살려고 하는데서 주어진 선물인 것이며, 이를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참된 신앙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한 해가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나의 영광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갑시다.


경자년 황금쥐띠 해의 첫날인 오늘 다시금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빕니다. 황금 쥐띠 해를 시작하면서 저 역시도 올 한 해가 예전 프란치스꼬 교황님께서 언급하셨던 것처럼 목자로써 양들 곁으로 먼저 다가가고 그들의 먹을 것 곧 말씀의 양식을 챙겨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끌어안고 함께 나눔으로써 저 자신에게서 <양 냄새가 물씬 나는> 목자가 되길 희망하며 다짐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도록 결심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네.>(히1,2참조)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