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표

by 후박나무 posted May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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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체로키 족의 달로는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 가고 ‘나뭇잎이 커지는 달’(아파치 족)이 왔다. 북한산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올라 부풀어 오른다. 아직 쌀쌀하던 이른 봄에 움을 틔워 작설(雀舌) 이라 불릴만큼 앙징맞게 내밀었던 작은 잎이 부쩍부쩍 자란다. 겨우내 투명하게 속살을 내 비치던 숲도 이젠 짙은 연두색으로 가리워져 간다. 한반도의 아열대화 영향인지, 순서대로 피던 꽃이 이제는 거의 한꺼번에 피어나는 듯 하다. 사정이 그러하니 라일락의 은은한 향내나 영산홍의 화사한 빛깔과 결부된 기억들의 순서도 뒤죽박죽이 된다. 이렇듯 자연의 질서교란은 직접적으로 우리네 삶의 질서도 교란한다.

 

도미니꼬회 수사신부인 앨버트 노울런은 거의 40년전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에서 예수가 살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징표가 아주 흡사하다고 보았다. 즉 파국이 다가오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도 모르거니와 안다고 하여도 파국을 피할 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처해있어 원치 않으면서도 끌려들어간다고 보았다. 한 예로 자신의 건강을 위한 간단한 생활양식의 변화도 어려운데. 인류전체가 다음세대를 위하여 편리함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건 억지다.

 

예수시대의 유대인들은 빈부의 격차와 가혹한 세금. 위선적인 종교인등으로 말미암은 사회적불만이 결국 그들을 파멸로 이끌 로마에 대한 반란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반면 21세기라는 시대는 이에 더해 쓰레기를 양산하는 자타- 공멸적인 생활양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쓰레기 더미에 깔려 죽는 끔찍한 미래를 피할 수 없다. 파국을 눈앞에 두고서도 이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와 예수시대의 징표는 동일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인류에게 ‘시대의 징표’를 각인시켰을뿐 아니라, 다가오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인류가 생활양식을 바꿀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 가능성은 매우 유동적이긴 하나 이전에 비하면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