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할머니!

by 후박나무 posted Mar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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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평소 때와 같이 미사후 앞마당이나 걸으려고 나갔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내 몸이 우이령을 향하였다. 우이령 정상에 가본지도 벌써 해를 넘겼다. 덕분에 오랜만에 뜻하지 않은 부하를 받아서인지 며칠 시름시름 앓았다. 같은 환절기라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때보다는 겨울에서 봄이 될 때 몸에 부담이 많이 가나보다. 수도회 외부지원자일 때 청주의 경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던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에서 일할 때도 이맘때쯤이면 줄초상이 나곤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장례미사가 2대있었고 운구를 하여 양로원 옆의 동산에 마련되어있는 장지에 안장하니 오전시간이 다가고 말았다. 점심후 봄비치고는 빗발이 굵어 우산을 받쳐 들고 공동묘지로 올라갔다. 오늘 새로 조성한 묘 상태도 점검할 겸 묵주기도도 할 겸…….올라가보니 오늘 남편 베드로를 떠나보낸 마리아 할머니가 새로 쌓은 봉분 앞에서 우산을 들고 울고 계셨다. 마리아 할머니의 우산은 당신 몸을 가리는개 아니라 베드로 할아버지의 무덤을 덮고 있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비를 맞아 추울 거라고 걱정하며 눈물짓고 계셨다. 사도 바오로의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로 시작하는 일련의 이야기가 너무 인위적이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게 바로 그때다.

 

비를 맞아 추울까봐 우산을 들고 새 무덤의 봉분을 가린 채 비를 맞고 서 계시던 마리아 할머니의 지극한 모습은 덴마크의 여류작가 Karen Blixen과 그녀의 원작소설 ‘Out of Africa’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첫 부분인가에서 과거를 회상하던 카렌은 아프리카 원주민(캐냐) 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한다. 그녀가 보기에 그들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유럽인들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기계를 잘 다루는 유럽인들은 그들의 삶도 기계처럼 앞뒤가 꼭 맞고 자신들의 계획대로 되어야 성공한 삶이라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고장 난 것이기에 이런 사고방식에 섭리나 은총이 개입할 여백은 없다.

 

https://youtu.be/Rjzf_cWzlp8

 

원작소설 보다는 시나리오가 낫고, 시나리오를 살리고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O. S. T 로 쓰인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 장조 2악장 Adagio 다, 영화 Out of Africa 는 현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우리들이 진정 잃어버린 것은 자유이며 자유를 지불한 대가로 일종의 안전을 얻었으나 그런 삶은 필연적으로 권태와 무기력으로 귀결됨을 일종의 경계인 인 로버트 레드포드를 통해 보여준다. 아프리카를 떠나 구대륙으로 돌아가는 카렌은 이런 사실을 나름 깨닫고 그의 하인들에게 자유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