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다. 사제는 미사중 교우들의 이마나 머리에 재를 얹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고 하는데, 당시 나의 처지가 곤궁했던지 지금껏 그날의 예식이 잿빛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약수동의 어느 부잣집에서 숙식을 하며 가정교사 생활을 했던 당시의 내 심신의 처지는 맹자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이란 말로 잘 표현된다.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 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먹을 게 있으면서도 안 먹는 것과 없어서 못 먹는 것은 큰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