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by 후박나무 posted Mar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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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혹은 병이 깊어지면서인지 하던 짓 안하고 안하던 짓 하게 된다. 그렇게 변해 가는가 보다. 근래에 생긴 새로운 버릇은 남이 읽어주는 소설을 듣는 거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힘이 드니 책을 손에 잡지 않게 되고 대신 낭독하는 성우의 도움을 받아 새 소설이나 책을 읽는 것이다. 내 기억에 눈물지며 읽었던 책은 많지 않다. 제일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강풀 씨의 “바보 승룡이” 다. 당시에 고난회 관구장 으로 샤르트르 바오로회의 관구장과 성. 바오로(청량리)병원에 원목파견에 합의하고 누구를 어떤 조건으로 파견할지 협의차 바오로 병원을 방문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당시 원목 실에 근무하던 수녀님이 요즈음 환우들 사이에서 잘 나가는 책이라 하며 바보 승룡 이를 가져다주었다. 만화인 그 책을 보면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이 책이 처음이다. 권정생이란 이름은 들어는 봤지만 크게 관심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분의 동화 “몽실 언니”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가난하고 병고에 시달리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세상은 으레 그러려니하며, 밟힌자들끼리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실감나게 알게 되었다. 전혀 모르던 세계…….한 번도 배가 고파본적이 없는 사람.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참고 넘어가본적이 없는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세상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뵈올 것이다.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와 조선조 이래한 번도 청산해 보지 못한 부정, 부패세력의 공고화에 따라 역사는 서러운 사람을 우리 둘레에 차고 넘차개 했다. 권정생은 글모음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쓰는 동화를 그냥 이야기라 했으면 싶다. 서러운 사람에겐 남이 들려주는 서러운 이야기가 한결 위안이 되고 그것이 조그마한 희망으로까지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서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옆에는 언제나 따뜻한 이웃들도 함께 있다. 우리 민족이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서로 도우며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또 자신들도 모두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몽실이를 힘껏 도와주는 <몽실언니> 속의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그들이다. 나는 그런생활을 영위하는 계층사람들의 삶을 모르기에 그들만이 갖는 이심전심, 어우러 살아가는 지헤를 알리없다.

 

비록 작품을 통해서만 이라도 몽실이, 점득이의 세상을 맛보게 되었지만 울림은 컸다. 몽실이가 지닌 심성은 가난과 병고의 상황에서만 양성될 수 있는 것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