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意識)이 의식(意識)을 의식(意識)하는 것이 명상(瞑想)이다'.

by 후박나무 posted May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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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19

 

어제 아침에는 기대치도 않았는데 소나기같은 비가 한줄기 지나가더니 오늘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부는데도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약간은 무거운 아침 공기 속에 산책을 하며 딱따구리 녀석이 죽은 밤나무 가지를 쪼는 경쾌한 소리를 듣다. 이제는 시력이 나빠질 대로 나빠져 안경을 써도 2~30 미터 거리에 있는 녀석이 빨강머리 딱따구리인지 오색 딱따구리인지 구분이 안긴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딱따구리의 리드미컬한 소리를 즐기고 있는데, 난데없이 주방 창고의 냉장장치가 돌아가며 산통(算筒)을 깬다. 딱따구리는 그 소리에 놀라 날아가고…….우리 생활이 이런 식이다.

 

의식이 의식을 의식할 때 우리는 진정 명상하는 것이며 ‘깨어’ 기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깨어있기에” 지금 자신의 안팎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침묵의 소리가 들린다함은 이분법적 세계의 소음을 벗어낫기에 가능하다. 아마 좌망(坐忘)의 경지 일게다. 이 차원에서야 비로소 사랑이 가능해진다.

 

사랑이란 의지의 문제가 아니므로 이것을 강제한다면 또 다른 율법이 되고 만다. 서로 사랑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너와 내가 이분법적으로 갈리는 존재 상태에서 실행하고자 한다면 지켜야 하는 율법에 하나를 더 얹어놓는 격이다. 반면에 예수가 말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모두가 하나임을 느끼고 볼 수 있는 영역에 머무르라는 언명으로 들린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사가가 그토록 반복하여 말하는 ‘사랑하라“는 당부의 말씀은 기도하라, 깨어있어라 등등 과 같은 말이다.

 

https://youtu.be/yvvJHkOrb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