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마태오 24, 37-44

by 이보나 posted Nov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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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교회력으로 새해, <가해>가 시작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곧 기다림, 우리 구원을 위해 오시는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사람의 인생은 어찌 보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기다림의 연속된 삶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신앙도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수천 년 동안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기다렸고, 신약의 하느님 백성들은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에서도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일상의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에서나 신앙에서도 참다운 기다림은 두 손을 놓고 막연히 넋 놓음의 기다림이 아니라, 깨어 기다리면서 우리네 삶을 부단히 사랑하며 가꾸어 나가는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며 깨어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제게 힘을 줍니다. 

『일 년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에게 물어보세요. 한 달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세요. 하루의 가치는 신문 편집장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 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일 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일 초의 가치는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천 분의 일 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육상 선수에게 물어보세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또한, 당신에게 너무나 특별한, 그래서 시간을 투자할 만큼 그렇게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공유했기에 그 순간은 더욱 소중합니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현재를 선물Present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한순간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며, 참된 진리와 자유를, 영원한 생명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처럼 누구나 기다림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무엇을 바라고 기다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고, 그 사람의 삶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까닭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교회 안에 대림절이 시작된 지 20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희망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으며, 오늘도 많은 이들이 불의와 부패, 부정과 차별에 쓰러지고 상처받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 그리스도를 희망하는 삶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합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깨어 있어라.’(24,42), ‘준비하고 있어라.’(24,44)는 말씀으로 제자들이 어떤 삶의 자세로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의 현실 상황은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맷돌을 갈고 음식을 준비하며 일터에서 일하고 있을 때, 곧 평범한 우리 일상을 살아갈 때, 어느 날 갑자기 오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당신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잠에서 깨어 두 눈을 초롱초롱 뜨고 있다는 것입니다. 졸음, 혼미와 혼돈상태가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가 아니라 맑은 정신이 지배하는 빛의 세계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사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제2 독서에서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하는 권고하는 바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깨어 있어라’는 상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13,12~14) 바오로 사도는 ‘입는다.’라는 동사를 되풀이하면서 마지막에 그리스도인들이 입어야 할 적합한 옷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입는다.’라는 말은 은유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 다른 사람의 행위를 그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입는다.’라는 표현은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특히 세례와 연관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3,27)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현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에 인도된 자세와 생각들로 걸어가는 것, 제1독서의 이사야가 예고한 대로 『주님의 빛 속에서 걸어가는 것』(2.5참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을 향하여 걸어가면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주님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 신앙인들의 삶을 변형시키는 ‘빛’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시23,4)

주님은 또한 “준비하고 있어라”(24,44)고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로 준비하라는 말씀일까요? 오늘 복음과 이어지는 비유에서 마태오는 “충실한 종이 멀리 떠난 주인을 기다리듯”(24,45~51),“기름이 채워진 등을 가진 처녀들이 신랑을 기다리듯”(25,1~13) 준비하라고 알려주십니다. 이렇듯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의 아들이 올 때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겉으로 잘 식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24,40~41)라는 구체적 비유에서 드러나듯이, 바로 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데려가지만, 준비하고 있지 않고 방심한 사람은 버려둘 것입니다. 오실 신랑이신 사람의 아들을 깨어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내적 자세 곧 기름’이 무엇인지는 신약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행에 전념하는 것, 남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것(티3,4), 주님께 대한 신앙을 증언하는 것(1베3,15), 세상의 속된 방식이 아니라 온전히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생활방식을 증언하는 것(2코10,6),온갖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 평화의 복음으로 무장하는 것(에6,15),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는 것(1요3,11)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깨어 있어라.’,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씀은 종말을 간절히 기다리던 초대 교회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간절히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오늘 새로운 전례력 가해를 시작하고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서 오늘을, 새로운 전례력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는가? 나의 영혼과 마음과 정신을 맑은 상태로 ‘깨어 있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맞이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나는 내 삶의 결실을 맺기 위하여,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분명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준비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 때,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고, 종말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우리의 삶의 열매가 풍성히 맺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결정해 둔 때나 시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때, 시간에 불쑥 오십니다. 따라서 늘 단정한 몸과 마음으로 깨어 준비하도록 합시다. 그것이 축복의 길이요 또한 아름답고 멋지게 사는 길이라고 봅니다.“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로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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