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 마태오 5, 13 - 16

by 이보나 posted Feb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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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당신의 참행복 선언에 귀 기울이던 군중을, 예수님은 직접 “너희”라고 친근하게 부르시며, 당신 때문에 세상 사람들한테 모욕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예전과 달리 소금은 값싸고 흔한 것이지만,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물도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소금이 없으면 쓸모 없어져 버려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바로 이 소금의 역할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빛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흔한 것처럼 느끼지만, 인간의 생명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빛입니다. 빛이 있어야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볼 수 있고, 빛이 있어야 살 수 있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히고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을 따뜻이 녹이는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5,13. 14) 우리는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너무나 잘 알려진 표현이지만, 성서에 등장하는 오직 한 사람, 롯의 아내는 ‘모르면서 그런 말 하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할 것입니다. 롯의 아내인 그녀는 천사의 다짐을 듣고도 호기심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되돌아본 순간 진짜 100% 소금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고서는 그녀에게 ‘진짜 소금이 되어서 좋겠습니다.’, 라고 부러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소금만 놓고 본다면 그만큼 쓸모없고, 다루기 힘들고, 식용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소금 그 자체로만 본다면, 좋은 것 혹 유용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배고파 굶어 죽더라도 소금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갈증으로 목이 타더라도 소금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뿐입니다. 이렇게 소금 그 자체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소금은 땅을 불모지로 만듭니다. 소금은 생명을 앗아갑니다. 

오늘의 복음을 통해 예수께서 지적하신 대로, 소금은 다른 것과 섞였을 때만이 비로소 유익하게 쓰입니다. 우리는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섞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과 섞여야만 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생각하거나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작 인간사의 요리 냄비에 던져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인간사의 냄비에 홀로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그런 인간사의 냄비, 세상 속에 더불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런 냄비,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야만 하고 섞여야만 합니다. 이들은 소금처럼 다른 음식 재료와 함께 섞어지며, 실제로 녹아 없어져야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럼으로써 가장 훌륭한 맛, 입에 꼭 들어맞는 맛을 내어야 합니다. 이처럼 소금은 다른 것과 섞이고 녹아 없어질 때 자신이 가진 고유한 짠맛으로 음식의 부패나 변질을 막고, 음식에 맛을 내듯이 우리 또한 냄비 곧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소금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역할 곧 ‘제맛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냄비나 용기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때 소금이 소금다워지듯이, 세상의 소금인 우리 역시도 언제나 ‘세상 속, 세상이란 용기 속에서만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제자들만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제자들인 우리가 예수님의 행복 선언을 듣고도,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한테 외면당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의 맛을 전해주지 못하는 제자들은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은 외부의 혼란과 박해를 조금만 받아도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행복 선언 안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참된 존재 이유와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를 받아 그 위에 삶의 토대를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소금’이 됩니다. 세상에 비전을 주고, 변화된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언젠가 어느 수녀님이 제게 보낸 메일에서 “신부님은 아직도 소금의 짠맛을 잃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던 질문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이 질문이 늘 저 다운 삶을, 제 존재 이유를 환기해주는 화두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땅의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맛을 내는 사람, 맛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께서는 우리가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처럼 자신은 죽어가면서 세상 안으로 스며 들어갈 때, 제자들은 비로소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자기네가 세상의 빛이라고 외쳐 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됫박으로 등불을 덮어버리거나 아예 불빛을 가로막고 있음에도 자신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사실 빛이 소중하지만, 빛만으로는 역시 쓸모없습니다. 빛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빛만으로 여러분은 사물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빛만으로는 잘못을 캐내기 위해 고문당하는 이의 눈앞에 일부러 들이대는 전기 불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빛만으로는 해롭습니다. 빛은 그 자체보다 다른 사물을,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보게 할 때 유용합니다. 빛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상응할 때, 우리를 통해서 유익하게 쓰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사물을 실재, 어둠이나 상처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필요한 조치가 어떤 것인지 비추어야 하며, 이 세상을 진리와 정의로 밝게 비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요 우리의 사명입니다. 세례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활초를 통해서 빛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시오!" 

우리는 소금이 되어야 하지만, 섞이지 않는 소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빛이 되어야 하지만, 비추지 않는 빛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행동한다면, 그때 우리는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될 터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희망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는 저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 삶의 성공 여부가 예수님과의 내밀한 일치 여부에 달려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 15,5)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써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실천하는 ‘착한 행실’로써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런 착한 행실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찬양받게 됩니다. 착한 행실은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착한 행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착한 행실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뜻’, 그분이 원하시는 것에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1 독서 이사야서 58장 7절과 10절 그리고 화답송인 시편 112편은 우리한테 하느님 뜻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자인 하느님을 닮아가며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줍니다. 그들은 언제, 얼마만큼의 수확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눈물로 뿌린 씨앗을 기쁨으로 거두리라는 희망으로 사방에 씨앗을 뿌립니다. 이 의인들한테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 자비의 빛이 흘러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하느님의 ‘의로움’과 ‘자비’를 드러내는 착한 행실을 통해, 그들이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서 어두운 세상 안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이제 더 이상 율법이 기록된 성경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강조한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무상으로 베풀어진 사랑의 선포이며,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선포이고, 그 나약하고 무기력한 행위로부터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1코 2,4참조) 세상에 증거해야 할 가장 큰 ‘빛’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자신들의 삶으로써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때, 교회는 진정 산 위에 있는 마을과 같이, 온 집안의 식구들을 비추는 등경 위에 놓여 있는 등불과 같이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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