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마태오 1, 18 - 24

by 이보나 posted Dec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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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본디 12월 17일 복음(1,1~17)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그 족보의 맨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이 그리고 바로 그 앞에 요셉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저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심이 갑작스럽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 오랜 한 가문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그 표현이 우리 한국인의 정서나 사고 의식과 아주 흡사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곧 우리 격언에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다!’는 것과 너무 흡사합니다. 다만 5번에 걸쳐서는 이런 단서를 달았지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서 자식을 낳았다.’는 표현은 곧 ‘어머니에게서 낳음을 받았다.’는 특별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에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제 복음에 이미 예수님은 요셉에게서 태어난 분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1,16)고 기록하면서, 오늘 복음에서는 그 까닭을 “마리아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1,20)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표현은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곤혹스럽고 황당하지만, 그 이유를 오늘 복음은 요셉의 꿈을 통해서 그 해답을 주려고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장황하게 족보를 기록한 까닭은 바로 오늘 복음을 열기 위한 발판이었으며, 그 핵심은 곧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얼마나 혹독한 이야기를 요셉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했을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우리 각자와 그리고 삶에 대조해서 숙고할 때 신앙의 깊은 차원, 하느님의 섭리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셉’이라는 이름이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요셉이란 이름은 ‘하느님께서 보태 주시다. 하느님께서 얹어주시다. 하느님께서 덧붙이시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는 그 이름에서부터 요셉 성인이 누구이며 어떤 소명을 받고 태어나셨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셉 성인께서 예수님의 양아버지로 선택되신 까닭은 바로 그 자신의 뜻과 전혀 다른 하느님의 연장과 도구로써 선택에 따른 특은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본래의 요셉의 의중을 성서는 밝히고 있으며, 이것이 한 남자의 지극히 자연스럽고 성숙한 선택에 따른 응답, 곧 하느님께 뜻에 대한 신앙의 순종입니다. 다만 그런 선택의 이면에는 요셉 성인의 됨됨이가 잘 드러난 ‘상남자’다운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1,19) 이로써 우리는 간접적이지만 요셉 성인의 인간적이고 신앙적인 내면을 엿볼 수 있다고 봅니다. ‘남모르게’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는데 우리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모르게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한 돌봄이 진정 ‘상남자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아주 쿨하게’ 떠나가려는 것이겠죠. 

 

물론 성경의 때는 모든 것이 충만할 때를 말하는데 오늘 복음에서도,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1,20)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만일 꿈에 천사가 나타나지 않고 요셉이 자신의 결정을 마리아에게 통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기에 가장 필요한 때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를 전달했으며, 이로써 요셉은 자신과 아내 마리아의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이해하게 되었고,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양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서 요셉에게 덧붙여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우리에게 맡기실 때 그냥 맡기시지 않고 그에 필요한 은총을 꼭 덧붙여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물론 요셉은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식 아닌 자식을 자기 자식인 듯’ 돌봐야 하는 ‘양부의 역할’을, 하느님의 선택을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그런 은총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하느님께서는 이미 아셨고, 그래서 올바른 가문의 사람을 선택했다고 느껴집니다. 하느님은 요셉 성인에게 특별한 은총을 덧붙여 주셨듯이 오늘 저희에게도 새로운 은총을 덧붙여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분명히 하느님은 은총에 은총을 덧붙여 주실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덤으로 덧붙여 주실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의 그릇이 저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실 때 다른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며, 다만 저희 모두에게 ‘너희가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늘 주님 구원의 도구이자 연장으로 잘 쓰임받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도록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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