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수요일: 마르코 7, 14 – 23

by 이보나 posted Feb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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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7,15) 

저는 지난 시간 국내와 외국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든 점은 주로 먹거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1995년 중국 여행과 2003년의 인도 여행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음식, 곧 식당과 그 조리 과정과 음식이 담겨 나오는 그릇 등의 더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포장마차나 길거리 음식은 거의 가 본 적이 없을뿐더러 먹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 더러움, 불결함 때문이고, 이런 저 자신이었기에 중국과 인도 여행은 참으로 힘든 여행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주님의 말씀처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7,15) 는 것을 제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음식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배탈, 곧 설사하는 제 몸의 허약함 때문입니다. 예전엔 음식 특히 깨끗하지 않거나 신선하지 않은 야채와 물은 저를 가장 힘들게 했고, 설사는 제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식당을 선정할 때 음식도 음식이지만 깨끗한 식당과 깨끗한 식기를 사용하는 곳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이런 제가 참 수도자답지 않지요! 이런 습관 때문에, ‘얻어먹을 수만 있다면 은총이다.’는 말이 저에게는 영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야 먹지!’ 

오늘 복음 말씀은 제게 화두처럼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오늘 예수님께서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그 부정의 뿌리가 인간 내심에 이미 내재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죄의 근본에 일곱 가지의 실마리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을 칠죄종 七罪宗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인간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7,20~23) 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특이한 점은 악하거나 나쁜 행동이 아니라 나쁜 생각들이라고 단정하듯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평온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외부의 자극이 오면 숨겨둔 본색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 왕인데, 다윗도 잠잠하다가 외부 자극을 받아 숨겨두고 왔던 인간의 마음 깊이의 나쁜 생각들이 치솟아 올라 행동으로 표출된 것처럼 우리 역시 동일합니다. 더욱 감추려 하거나 부정하려 하면 점점 더 악의 수렁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 인간의 약함입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끊임없이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답니다. “주님 제 안에 무엇이 있기에 제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싫어하는 것을 실행합니까?” (로7,15참조) 인간의 내심에 똬리를 틀고 자리 잡은 열두 가지 부정적인 잠재 요소가 있으며, 사람에 따라 혹 때론 어느 상황과 관계에 따라서 어떤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 밖에 있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 이미 내재된 나쁜 생각들, 의향들이 자신과 타인 관계를 더럽히는 부정의 뿌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본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이는 또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만남과 관계를 더럽히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은 우리 마음 안에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 내면에서 강하게 치솟아 올라오는 것을 잘 감지하고 식별할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과 은총에 힘입어 깨어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 오늘 제 마음 안에 있는 나쁜 생각들을 당신께 온전히 맡기면서, 저로 하여금 남에게 겸손함으로써 교만을 이겨 내게 하여 주시고, 남에게 어질고 남을 사랑함으로써 질투를 이겨 내게 하시며, 재물과 재능을 이웃과 나눔으로써, 인색함을 이겨 내게 하여 주시고, 제가 겪은 모든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분노를 이겨 내게 하여 주시고, 모든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탐욕에 빠져들지 않게 해주시고, 당신을 온전히 섬기고 선한 일을 자주 실행함으로써 게으름에서 벗어나 힘차게 살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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