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금요일: 마르코 7, 31 – 37

by 이보나 posted Feb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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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7,37)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여행은 그렇게 짧지 않은 거리(=대략 150km)이고, 쉽지 않은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길고도 험한 여정에서 예수님께서 힘들어하신 것은 그 거리와 여행의 힘듦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힘드신 것은 예수님께서 성서에 아무런 힌트가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과도 흡사한 사람을 그 어떤 지역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오늘 복음의 귀먹은 반벙어리 치유 이야기는 단지 눈에 보이는 치료와 치유 사건 이면의 다른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한 교훈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벙어리dumbness란 본디 음성언어를 발성할 수 없는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거나, ‘운보 김기창’ 화백처럼, 본디 말을 할 수 있었으나 어떤 원인으로 그 능력을 상실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농아聾啞인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는 귀먹은 반벙어리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곧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지만,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곧 자기 탓으로 듣지 못하기에 진리의 말도 하지 못하는 세상의 수많은 영적 장애인에 대한 본보기입니다. 복음에는 이런 교훈적인 사례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를 하신 다음에 꼭 등장하는 장님의 치유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마태오 복음 20, 17~19 수난 예고와 예리코의 소경의 치유 이야기, 마태오 복음 20, 29~34의 이야기처럼 귀먹은 반벙어리는 곧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듣는다고 해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자들과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이 이에 속합니다.

들음과 말함은 상호불가분의 본질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느 영어 학원 선전에 “귀로 듣고 따라할 수 없으면 영어를 배울 수 없다.” 는 표현도 있더군요. 이처럼 모국어든지 외국어 학습에서 기본은 말하기보다 우선하는 것이 듣기인데,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로10,17)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듣는 인간이며, 구원은 그러기에 듣는 인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때 입술에서 진리가 나옵니다. (예레7,28참조)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치유 과정에서 보여 준 몸짓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광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 (7,33~34) 고 치유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당신 손가락으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귀에 넣으셔서 막힌 귀를 뚫으신 다음에,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신 후에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결국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제대로 듣지 못함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셨기에 먼저 막힌 귀를 당신 손으로 뚫으시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가 오시면,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이29, 18)하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오늘 예수님을 통하여 군중들은 실현된 것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보고 더할 나위 없이 놀래서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되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구나.”(7,37)라고 말합니다. 이 치유의 이야기는 그러기에 단지 한 사람의 귀먹고 말을 더듬는 이를 치유한 이야기가 아닌,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향한 치유의 몸짓이며, 영적으로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담긴 예수님의 명령이자 외침입니다. 에페타, 열려라! 이는 곧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향해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에파타는 비단 오늘 복음이 선포되는 장소와 시간에 국한되는 말씀이 아니며, 이 말씀은 복음이 전파되는 세상의 모든 곳과 세상 끝날 때까지 영원히 지속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도 세례성사에서 ‘열려라 에파타’ 예식 때, “주님, 귀와 입을 열어 주시어, 뽑힌 이들이 귀로 들은 신앙을 입으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하고 사제는 기도합니다. 이 예식의 기도문은 오늘 복음 말씀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의 막혔던 귀가 열리어 복음 말씀을 듣고, 닫혔던 입이 열리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해주십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역시도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고 삶을 통해 전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다짐합시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그 말씀을 입으로 전하게 하시며, 삶을 통해 선포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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