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by 후박나무 posted Jul 09,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느님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영이라 할 때 막연하여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다. 마치 부처의 가르침이 손에 잡힐 듯 경전의 글자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만 전해지듯....(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

 

햇빛이 만물에게 제 꼴과 색깔을 찾아주고 소금이 제 맛을 내게 하듯, 하느님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영의 역할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긴 대로’ 살게 하는 것일 게다. 하느님은 쓰레기를 창조하시지 않으셨을 뿐더러 모세도 둘씩은 필요없을테니, 남 흉내 내지 않고 자기로서 살 때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6월말 년례피정의 빛으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는데 바로 이 낯설고 물선 환경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대처를 하게 되고, 창조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아브라함이 그때까지 살아왔던 삶의 자리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시작한 것이 75세라 한다.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이미 노년기가 시작된 지 한참 되었을 터. ‘너 늙어봤냐? 나 늙어봤다’ 는 노래가사도 있듯이 노년기는 일상적이던 모든 것이 낯선 것으로 다가오는 때다. 옷을 입고 벗는 일, 세수하고 머리 감는 일,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운전하는 일…….앉고 서고 걷는 일.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 배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굳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아도 이미 낯선 곳에서 살게 됐을 것이다. 야훼 하느님은 바로 그런 처지에서 이사악이, 미래가 창조될 것이라 약속한다.

 

이르던 늦던 누구나 맞게 될 낯선 노년기를,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야훼의 초대로 받아들였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기리며.